EU, 빅테크에 온라인 사기 압박
불법 자료 방치하면
최대 매출 6% 과징금
유럽연합(EU)이 온라인 금융사기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빅테크 기업들을 정조준하고 나섰다.
파이낸셜타임스(FT) 23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숙박 플랫폼 부킹홀딩스에 대해 디지털서비스법(DSA)에 근거한 공식 정보 요청을 발송했다.
EU 디지털 정책 책임자인 헨나 비르쿠넨 집행위원은 “점점 더 많은 범죄 행위가 온라인에서 일어나고 있다”며 “온라인 플랫폼이 불법 콘텐츠를 탐지하고 차단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짜 은행 애플리케이션, 검색결과 조작, 허위 숙박 정보 등 주요 사례들을 지적하며 대응 실태를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향후 정식 조사를 거쳐 과징금으로 이어질 수 있다. DSA에 따르면 불법 콘텐츠나 허위정보 차단에 실패할 경우 기업은 전 세계 매출의 최대 6%에 해당하는 벌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
비르쿠넨 위원은 EU 내 온라인 금융사기로 인한 연간 피해액이 40억유로를 넘어섰다고 설명했다. 그는 “금융 사기는 정신적 피해를 유발할 수 있으며, 인공지능 확산으로 탐지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애플은 성명을 통해 “사용자 보호를 위해 반사기 대책을 확대해왔다”며 “규제 당국이 잘못된 위협과 조사를 이어가는 동안에도 우리는 이용자들의 안전을 지킬 것”이라고 반박했다.
구글은 논평을 거부했으며, 마이크로소프트와 부킹닷컴은 EU와 건설적으로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EU는 이미 메타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대해 DSA 위반 혐의 조사를 진행 중이며, 중국 전자상거래업체 티무와 셰인의 불법 상품 유통 여부도 점검하고 있다. 그간 아동보호, 온라인 쇼핑, 선거 공정성에 집중해온 EU가 금융사기를 새로운 규제 우선 과제로 삼은 것이다.
EU는 디지털 규제 집행이 지연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일론 머스크의 X(옛 트위터)에 대한 조사 결과가 여름 이전에 나올 것으로 예상됐지만 미뤄지면서 집행력 약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비르쿠넨 위원은 “앞으로 몇 주, 몇 달 안에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며 다수의 조사가 진행 중임을 강조했다.
이번 조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EU의 규제가 자국 기업을 차별한다고 비판하며 보복 관세 가능성을 거론하는 등 미·EU 간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이뤄졌다. 빅테크 기업에 대한 EU의 강경한 태도가 양측 간 갈등을 더욱 부추길 가능성도 제기된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