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새고 외벽 갈라진 위험천만 공동주택

2025-09-25 13:00:35 게재

종로구 이화연립 12가구 14명 거주중

안전진단 D등급인데 “이사갈 돈 없어”

“아직도 이런 데가 있어요? 어떻게 서울에 공동 화장실을 쓰는 집이 있어요?”

내·외국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서울 종로구 대학로와 낙산공원 사이 이화동 한 골목. 4층짜리 연립주택에 사는 주민을 돕기 위해 방문했다는 한 주민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층마다 하나씩 있는 공동 화장실 내부는 끔찍할 정도다. 남·여 구분 없이 사용하는 두칸 중 한칸에 ‘사용금지’ 문구가 붙어 있다. 대·소변이 아래층 화장실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당연히 아래층 화장실 두칸 중 한칸도 ‘사용금지’다. 위쪽에서 낙하물이 떨어질 수 있어서다.

이화연립 주민들이 종로구 관계자에게 비가 들이치고 하늘이 보이는 천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무너지는 건물을 받친 철제 구조물과 곰팡이가 핀 벽지가 보인다. 사진 종로구 제공

25일 종로구에 따르면 지난 1965년 준공돼 올해로 환갑이 된 ‘이화연립’의 안전 문제가 심각하다. 두차례 안전진단에서 ‘매우 위험한 상태(D등급)’ 결과가 나왔는데 거주자 대부분이 고령에 수급자라 위험한 상황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이주할 엄두를 못내는 형편이다.

이화연립은 지상 4층 건물에 30세대가 입주한 공동주택이다. 하지만 건물이 낡고 보수조차 어려워 현재는 12가구 14명만 거주하고 있다. 주요 구조부인 슬래브와 기둥 등 건축물이 전반적으로 낡아 지난 2006년과 2012년 실시한 안전진단에서 모두 ‘D등급’을 받았다. 현재 서울시가 관리하는 D등급 건물은 50곳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균열과 부식, 콘크리트 탈락 등이 진행되고 있어 매우 위험한 상태”라며 “정밀안전진단 실시 후 전반적인 대수선 또는 재건축이 시급하다”고 판정했다.

실제 공동주택 안팎은 심각한 안전문제가 한눈에 보일 정도다. 외벽이 갈라지고 건축 구조물 중 일부가 떨어져 나오면서 아래쪽에 돌 무더기처럼 쌓이고 있는 상태다. 1층 바닥이 꺼져 지하공간이 노출된 곳이 있는가 하면 비가 들이치고 하늘이 보일 정도로 틈새가 벌어진 천장도 있다. 배수가 안돼 건물 한가운데 있는 중정(中庭) 위쪽에 비가 들이치지 않도록 지붕을 씌웠는데 각 세대에서 사용하는 가스보일러 연통은 건물 바깥이 아니라 내부를 향하고 있다. 건물이 전반적으로 내려앉으면서 층과 층 사이에는 철골 지지대가 설치돼 있고 바닥과 계단 등에는 구멍을 메운 ‘땜빵’ 자국 투성이다.

종로구에서 서울시 등 지원을 받아 지난 2008년부터 여섯차례에 걸쳐 보수공사를 하고 시설물을 교체했다. 전기시설 교체, 복도 천장 슬래브 철판 보강, 안전 취약시설 보수·보강 등이다. 하지만 주민들 불안감은 여전하다. 서정묵(67)씨는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밤이면 위에서 돌멩이가 뚝뚝 떨어진다”며 “아무리 관리를 해도 곰팡이가 피고 건물이 썪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웃 조 모(61)씨는 “부엌 천장이 내려앉아서 방도 곧 그렇게 될 것 같아 잘 때도 항상 불안하다”며 “밑은 무너지고 위는 내려앉는데 이사를 가고 싶어도 이 집을 비우고 갈 수가 없다”고 호소했다.

종로구는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에 근거해 서울시에 국민임대주택 특별공급을 요청한 상황이다. ‘주택 내력 구조부 등에 중대한 하자가 발생해 거주자 보호를 위해 이주·철거가 필요하다’는 항목이다. 하지만 ‘인정’ 권한을 가진 서울시는 ‘중대한 하자’라는 판단 기준이 모호하고 정책 형평성을 고려할 때 특별공급이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종로구는 정밀안전진단을 추가로 실시하고 건축물 구조 문제를 보다 면밀하게 확인하는 한편 서울시와 관련 기관에 실질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할 방침이다. 정문헌 종로구청장은 “법적 근거가 있는데 세부 기준 부재로 지원이 지연되고 있다”며 “서울시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세부 지침을 마련해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고 주민들이 조속히 안전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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