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를 뒤흔드는 Z세대의 반란
SNS로 세계를 보고
불평등한 현실에 저항
2025년 아시아 전역에서 1997~2012년 출생한 Z세대가 주도하는 반정부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이들은 단순한 경제적 박탈감을 넘어서 기득권 정치 엘리트의 부패와 특권, 구조적 불평등에 정면으로 저항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 매체들은 이 현상을 “Z세대 혁명”으로 정의하며 정치적 파급력을 조명했다.
가장 극적인 사례는 네팔이다. 지난 9월 초 네팔 정부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주요 소셜미디어 플랫폼 사용을 전면 금지하자 분노한 Z세대 청년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틀 만에 총리 카르가 프라사드 샤르마 올리는 사임했고,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했다. 경찰에 따르면 사망자는 51명, 부상자는 약 1400명에 이르렀다. 시위의 기폭제는 정치인 자녀들이 SNS에 공개한 호화로운 사생활이었다. 루이비통, 카르티에, 구찌로 장식된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포즈를 취한 장관의 아들 사진은 월소득 100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청년들 현실과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시위에 나선 24세 법학도 안잘리 샤는 FT와의 인터뷰에서 “정부는 온라인을 막을 수 있지만, 거리에 나선 우리는 부패와 불공정에 맞서 싸운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자카르타 최저임금의 10배에 달하는 국회의원들 고급 주택 수당이 폭로되며 시위가 촉발됐다. 경찰 차량에 치여 배달 청년이 사망하면서 분노는 극에 달했고,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은 일부 특권을 폐지하고 재무장관을 경질했다. SNS 계정 @cabinetcouture_idn은 정치인 가족들의 명품 소비를 추적하며 여론을 더욱 악화시켰다.
방글라데시에서는 특정 정당에 유리한 공무원 채용 제도에 대한 불만이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다. ‘몬순 혁명’이라 불린 이 운동은 77세의 독재자 셰이크 하시나를 인도로 망명하게 만들었고, 시위 주도 세력은 ‘국민시민당’을 창당해 차기 총선 출마를 선언했다.
WSJ와 FT는 이러한 시위들이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구조적 한계에 대한 세대 전체의 저항이라고 분석했다. 세계은행과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네팔 청년층의 21%, 방글라데시 30%, 인도네시아 21%가 고용·교육·훈련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있다. 세 나라 전체 노동자의 80% 이상이 비공식 고용 상태이며, 스리랑카 청년 실업률은 22%에 달한다.
이른바 ‘인구 보너스’는 현실에서 ‘인구 적자’로 바뀌고 있다. 높은 청년 비율에도 불구하고 안정된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며, 정치권은 여전히 세습과 특권으로 유지되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82명의 주지사 중 71명이 정치 가문 출신이었고, 하원의장은 대통령의 사촌이었다.
Z세대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는다. 네팔에서는 시위대가 부패와 무관한 전 대법원장 수실라 카르키를 과도정부 수반으로 임명했고, 2026년 3월 조기 총선을 확정했다. 스리랑카에서는 청년 투표가 좌파 성향의 아누라 쿠마라 디사나야케의 대통령 당선을 이끌었으며, 방글라데시의 Z세대는 새로운 헌법을 약속하는 시민 정당을 창출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