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차할부·부품업체 잇단 파산…금융시장 충격
신용평가·대출심사 부실 논란
미국 신용시장에서 자동차 관련 기업들의 연쇄 부실이 불거지며 금융시장 전반에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 24일 보도에 따르면 서브프라임 자동차 대출업체 트라이컬러 홀딩스(Tricolor Holdings)의 파산 신청에 이어, 자동차 부품업체 퍼스트브랜즈 그룹(First Brands Group)이 법정관리를 검토하면서 채권 투자자들이 충격에 빠졌다.
트라이컬러는 서브프라임(저신용자 대상) 자동차 할부 대출을 묶어 자산유동화증권(ABS) 형태로 판매해왔으며, 올해 초까지만 해도 신용평가사로부터 AAA 등급을 받았다. 그러나 9월 들어 이자 지급에 실패하면서 부실이 드러났고, 미 법무부는 현재 사기 혐의까지 조사 중이다.
회사에 대출을 제공한 약 20억달러 규모의 금융사들은 차량 압류에 나서는 등 손실 최소화에 나섰다.
지난 3월까지만 해도 10억달러의 현금을 보유했다고 밝혔지만, 최근 몇 주 사이 긴급 구제금융 협상에 들어가며 파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회사의 후순위 채권은 액면가(1달러) 대비 불과 몇 센트 수준으로 폭락했다.
투자자들은 잇따른 부실 사태가 단순한 개별 사례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트라이컬러와 퍼스트브랜즈 모두 자산유동화·매출채권담보대출 같은 비은행권 자금조달을 적극 활용해왔으며, 이런 구조적 불투명성이 대규모 손실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미국 컬럼비아대 토마슈 피스코르스키 교수는 “이번 사태로 신용평가사가 거래를 더 엄격히 검토하게 될 것”이라며 “신용 공급이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월가 주요 은행들도 충격을 피하지 못했다. 트라이컬러 대출 발행을 주관했던 JP모건체이스와 피프스서드 은행은 수억달러 규모의 손실 노출이 예상된다.
한 채권투자자는 “JP모건처럼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은행이 어떻게 이런 위험을 놓쳤는지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투자자들은 은행이 실사 과정에서 적절한 검증을 거치지 못한 채 위험을 떠넘겼다는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 사건은 1조5000억달러 규모의 미국 레버리지 대출 시장 전반에도 불신을 키우고 있다. 특히 퍼스트브랜즈가 활용한 매출채권 담보대출은 비공개로 진행돼 투자자들이 기업의 실제 재무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 펀드매니저는 “수익률만 보고 위험 신호를 무시한 사례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비은행권 대출 확대가 규제를 피하는 ‘그림자 금융’ 성격을 띠고 있어 충격이 터질 경우 은행권보다 파급력이 더 클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여전히 새로운 자산유동화 거래에 참여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이번 주 3억달러 규모의 서브프라임 신용카드채권 판매를 추진 중이다. TCW자산운용의 애셋백드 금융 책임자 딜런 로스는 “증권화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며 “금융위기 이후 투자등급 구조화 상품이 실제 손실을 본 경우는 드물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실사(due diligence) 부실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FT는 “트라이컬러와 퍼스트브랜즈의 사례가 결합되면서 투자자들이 신용시장 전반의 위험 관리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연쇄 파산 위기는 금융위기 이후 은행권에서 비은행권으로 옮겨간 자금 조달 구조의 취약성을 드러냈다는 평가다. 신용시장의 균열이 확대될 경우 소비자 금융과 기업 대출 전반으로 불안이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