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통상환경, 무역질서 재편과 산업별 영향 ③석유화학

국내 석유화학, 글로벌 공급과잉 장기화로 벼랑 끝에 서다

2025-09-26 13:00:17 게재

설비 가동률 18%↓·생산설비 통합 등 구조조정 모색

저수익성·높은 재무 부담 … 신용등급 하향 압박 거세

글로벌 공급과잉 장기화로 인한 벼랑 끝에 선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이 설비 가동률 제고와 생산설비 통합 등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모색 중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 석유화학 생산능력의 약 18% 설비축소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저수익성과 높은 재무부담으로 신용등급 하향 압박이 거세졌다.

◆중국향만 고집하다, 일본과 격차 확대 = 26일 신용평가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석유화학산업은 여전히 공급과잉 상황으로 구조조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신용평가는 25일 세미나에서 우리나라 석유화학 산업은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등 범용 제품 비중이 여전히 50~60%로 높다는 점을 지적했다. 김호섭 한신평 연구위원은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중국향 수출을 늘리며 규모를 확대해 왔지만 이제는 글로벌 수요둔화, 중국발 공급 확대, 수출 시장 경쟁 강도 상승 등의 리스크에 노출되어 이익창출력이 크게 약화됐다”고 평가했다. 반면 일본은 생산능력을 축소하고 내수 위주의 수급 구조로 변모했다. 이에 따라 2022년 이후 국내와 일본 석유화학 업체 간의 디커플링이 심화했다.

김 연구위원은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이 과거 호황기 수준의 가동률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생산능력의 18% 규모의 설비 축소가 필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석유화학 기업들의 사업재편 논의가 한창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신용평가사들도 스페셜티 제품군으로의 포트폴리오 전환 및 통폐합 등 석유화학 산업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석유화학기업들은 최근 산업 구조 개편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지난달 정부는 석유화학 산업 관련 구조개편 방향 및 원칙을 발표했다. 주요 10개 석유화학 업체들은 에틸렌 270만~370만톤 (기존 생산능력의 18~25%) 설비감축 등 사업 재편을 위한 자율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하지만 신평사들은 기업 간 이해관계가 달라 실제 구조조정의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 있다고 예상했다. 자율적인 구조조정 방안 도출에는 여전히 많은 장애물들이 상존하고 있다. 우선 NCC 설비감축 규모 관련 어느 업체가 얼마만큼의 물량을 담당할지도 불확실하다. 현재 HD현대케미칼과 롯데케미칼, GS칼텍스와 LG화학 등 산업단지 내 통합 논의 등이 이어지고 있지만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다.

◆한·중·일 중 차입금 부담 가장 높아 = 재무안정성 측면에서 한국 석유화학기업의 차입금 부담이 동북아 역내 3개국 중 가장 높다. 석유화학산업은 2021년까지 안정적인 차입 구조를 유지해 왔으나, 2022년 이후 수익창출력이 저하되면서 순차입금/EBITDA(상각전 영업이익) 지표가 급격히 악화됐다. 순차입금/EBITDA는 2021년 1.1배에서 2024년 4.3배로 상승했다. 이는 영업환경 악화에 따른 현금창출력 저하와 더불어, 설비투자(CAPEX) 집행 지속, 차입 증가 및 금리 상승에 따른 이자비용 부담 확대 등 구조적인 재무여력 약화를 반영한 결과로 분석된다. 특히 범용제품 위주의 포트폴리오와 미흡한 고정 수요 기반, 열위한 원가 경쟁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외부 자금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석유화학산업은 수익성 악화와 재무안정성 저하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어 전례 없는 이중 부담 상황에 직면해 있다. 지형삼 나이스신용평가 연구원은 “중국은 공격적 증설에 따른 공급과잉 부담이 있으나 상대적으로 저렴한 원료 조달과 낮은 생산비용 등에 기반해 일정 수준의 수익성과 재무건전성을 유지하고 있다”며 “일본은 고비용 구조에도 불구하고 생산능력 축소를 통한 가동률 확보와 보수적인 투자 기조하에서 상대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도 한국 석유화학산업은 고정 수요 기반이 약한 범용 제품 중심의 포트폴리오와 상대적 원가 열위 구조가 지속되는 한 경쟁국과의 격차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유사 중심의 수직통합 가능성 = 한편 석유화학산업이 수직통합을 포함한 구조조정으로 진행될 경우 국내 석유화학산업 내 올레핀 제품 시장에서 정유사의 영향력이 확대될 전망이다. 정유사의 효율성이 높은 석유화학 설비는 유지하는 대신에 정유사가 석유화학사의 노후설비를 부담하게 되는 수직통합의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정유사는 석유화학사업 확대를 통한 에너지 전환 대응력 제고라는 기회요인과 함께 과중한 재무부담과 실적 개선 지연이라는 리스크를 안게 될 전망이다. 김문호 한국신용평가 선임연구원은 “글로벌 신규 석유화학설비 도입으로 국내외 석유화학산업의 수급여건 개선에 대한 불확실성이 큰 가운데 글로벌 석유화학시장 내 설비 효율성 경쟁도 국내 정유사의 석유화학부문 확대에 리스크로 작용할 것”이라며 “국내 정유사들의 차입 규모가 과거 대비 상승한 가운데 자금소요가 상당한 재무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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