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고 전기차가 더 빨리 팔린다
공급 늘고 가격 하락
미국 중고차 시장에서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더 빨리 팔리고 있다고 블룸버그가 26일(현지시간) 전했다. 신차 구매 보조금 축소가 임박했지만, 중고 전기차 시장은 오히려 열기가 뜨겁다. 중고 전기차의 평균 거래가격이 내연기관 중고차와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 내려온 데다, 재고가 소진되는 속도도 더 빠르기 때문이다.
플로리다에 사는 한 은퇴자는 한 달 전 2024년형 머스탱 마하-E GT를 중고로 샀다. 1년이 지나고 주행거리 1만3천마일이 늘어난 차량이었지만, 신차 가격이 약 5만5000달러였던 모델을 3만3000달러에 들였다. 12개월 사용에 대한 감가를 반영해 약 22퍼센트 할인된 값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처음부터 신차 대신 중고 전기차를 염두에 뒀다. 전기차의 감가가 내연기관차보다 더 가파르다는 점을 시장에서 이미 확인했기 때문이다.
코크스 오토모티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미국의 중고 전기차 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34퍼센트 증가했다. 같은 기간 신차 전기차 판매는 소폭 늘어나는 데 그쳤다. 8월 기준 중고 전기차의 평균 거래가격은 3만4700달러로, 내연기관 중고차와 거의 같은 수준이다. 전기차 재고가 소진되는 데 걸리는 기간도 평균 36일로, 내연기관차 42일보다 짧다.
수요가 붙는 배경에는 공급의 본격화가 있다. 2022년에 판매가 본격 시작된 신형 전기차의 3년 리스 물량이 대거 만기에 도달했다. 당시 처음으로 시장에 나온 모델로는 BMW i4, 캐딜락 리릭, 포드 F-150 라이트닝, 토요타 bZ4X 등이 있다. 전기차의 감가율이 높다는 인식도 가격 하락을 부추겼다. 소비자들은 전기차 기술이 빠르게 진화할 것이라 예상해 신차 대비 중고의 매력을 더 크게 평가한다.
가격 메리트는 체감된다. 미국 중고차 플랫폼 자료에 따르면 2년 된 토요타 RAV4 가솔린 모델의 평균 가격은 3만1천1백달러 수준인데, 같은 해식 전기차 bZ4X는 이보다 약 6천6백달러 낮다. 두 차 모두 적재공간과 사륜구동을 제공하지만, 전기차는 가속 성능과 인포테인먼트 사양에서 우위를 보인다. 가솔린차가 6만마일에 이르면 냉각수 교체와 벨트 점검이 필요하지만, 전기차는 라디에이터와 점화플러그, 엔진오일이 없어 정기 정비 부담이 적다.
내구성에 대한 우려도 완화되는 추세다. 업계 데이터에 따르면 전기차 배터리는 예상보다 더 오래 버티는 사례가 늘고, 미국에서 판매된 대부분의 전기차는 배터리에 대해 최소 8년 또는 10만마일(16만Km) 보증을 제공한다. 3년 묵은 전기차는 여전히 긴 주행거리와 빠른 충전 성능을 유지하며, 대형 터치스크린과 히트펌프 같은 최신 편의 사양을 갖춘 경우가 일반적이다.
브랜드에 따라서는 전기차 중고 시세가 동급 내연기관보다 낮게 형성되는 현상도 뚜렷하다. 쉐보레, 스바루, 토요타 등 일부 브랜드에서 그 격차가 확인된다. 시장에서는 전기차를 직접 경험한 소비자들이 주변에 영향을 미치며 수요를 넓히는 네트워크 효과도 관찰된다고 본다. 지방 중소도시에서도 충전 접근성과 배터리 수명만 해소되면 전기차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 않다는 현장 증언이 이어진다.
다만 지금의 가격 메리트가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을 수 있다. 중고 전기차가 내구성과 상품성을 인정받을수록 감가율이 완만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럼에도 리스 만기 물량은 내년에 더 늘 전망이다. 업계는 내년 추가로 약 24만대의 전기차가 3년 리스 종료로 중고 시장에 출회될 것으로 내다본다.
연방구매 보조금이 이달 말 사라지면서 신차 전기차 수요는 둔화할 수 있으나, 중고 전기차의 거래 호조는 당분간 이어질 공산이 크다. 미국 중고차 시장에서 전기차 비중이 신차를 앞지르는 시점이 머지않았다는 관측도 힘을 얻는다. 이는 전기차의 잔존가치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이고, 처음 구매하는 소비자들의 진입 장벽을 한층 낮추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