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물푸레나무와 식물의 푸른 색소
큰아버지는 멀쩡한 두 아들을 놔두고 나이어린 조카에게 팽이를 만들어주어 구설에 올랐었다. 나무 귀한 평야지대에서 한쪽 다듬잇방망이를 절반 좀 안되게 잘라 깎아 팽이를 만들어놓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풀 쑤어 먹인 옷가지를 두드려 펼 때마다 큰어머니는 “시상에나, 갸가 을매나 이뻤으면” 하고 넋두리처럼 말을 내놓았다.
기억에 의지해서지만 그 팽이의 주인공인 내 깜냥에도 할 말이 없지는 않다. 타작을 끝낸 건넌방에서 새끼 꼬는 어른들 쌈지담배는 내가 일일이 침 발라 가며 다 말았다. 그것도 담배 연기 맡아가며. 그뿐이랴. 막걸리 심부름도 했고 큰아버지 아버지 무릎을 번갈아 오가며 북도 쳤고 갖은 재롱을 다 피워댔던 것이다.
이제 와 돌이켜 생각해보면 도구도 마땅치 않았던 시절 단단한 다듬잇방망이를 자르고 손질하는 게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톱질은 물론이고 못 박기도 쉽지 않은 다듬잇방망이는 흔히 물푸레나무로 만들었다. 단단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무였다는 뜻이다.
그러니 관아의 군졸이 죄수 곤장을 칠 때는 잘 부러지지 않는 물푸레나무를 썼다고 한다. 천자문을 미처 다 못 외운 아들 종아리를 때릴 때는 무르디무른 자작나무 회초리로 두남두었다는 말도 귀동냥해 들었다. 이처럼 물푸레나무는 단단할 뿐 아니라 탄력성도 있어 요새는 야구 방망이 재료로도 쓰인다.
그러고 보면 모내기 전에 흙을 개던 써레도, 쟁기날을 대던 나무도, 쟁기를 끌던 소의 코뚜레도 죄다 물푸레나무로 만들었으리라. 집안일에 쓰던 이러저런 목기의 재료로 쓰다 보니 남아나는 나무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화성 전곡리나 파주 교하, 무건리 오랜 나무들 정도가 기념물로 남았을 뿐이다.
물푸레나무 푸른색은 쿠마린 화합물 작용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물푸레나무는 나뭇잎이나 줄기 속껍질을 물에 담그면 담배 연기처럼 푸른 색소가 우러나온다. 승복에 어린 은은한 푸른빛도 이 나무를 태운 재로 물들인 것이다. 파란색 꽃을 피우는 식물에는 물망초 용담 제비꽃 나팔꽃도 있다.
엽록소의 구조를 밝혀 노벨상을 탄 리하르트 빌슈테터 같은 과학자들이 나서서 수레국화에서 파란색 색소를 내는 안토시아닌 계열의 화합물을 찾아내고 이 화합물이 토양의 산성도나 금속 이온과의 결합 여부에 따라 색깔이 다양하게 바뀐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최근에는 여러 분자의 안토시아닌 화합물에 두세 가지의 금속이 복합체를 이루어야 비로소 식물의 ‘드물고 귀한’ 색이 드러난다는 점을 간신히 짐작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물푸레나무의 푸른색을 드러내는 화합물은 무엇일까? 그것은 쿠마린(coumarin)이라 불리는 물질이다. 미나리과 식물에서 자주 발견되는 쿠마린은 아미노산에서 질소를 떼어낸 다음 더 접어서 고리 모양으로 만든 화합물이다. 탄소의 숫자가 고작 9개 정도인 쿠마린은 쉽게 날아가려는 물리적 특성이 있지만 분자끼리 수소 결합을 이루거나 분자에 당을 붙이면 식물의 액포 속에 안전하게 잡아둘 수 있다.
이들 액포 안에서 쿠마린은 태양의 강한 색소를 차단하고 엽록소를 보호하는 요긴한 역할을 맡는다. 에스큘레틴(esculetin)이라는 쿠마린 화합물이 물푸레나무에서 하는 일이다. 그렇게 구중심처에 든 엽록소는 여름내 햇볕을 잡아 둥치를 키우고 속내를 단단함으로 채운다.
공기를 푸르게 만드는 나무도 없지는 않다. 호주 시드니 서북쪽 블루마운틴에 사는 유칼립투스나무가 그 주인공이다. 유칼립투스 나뭇잎은 휘발성이 큰 몇 가지 분자를 만들어 공기 중으로 내보낸다. 아마 나무들끼리 뭔가 신호를 주고받는 물질일 것이다. 이를테면 ‘방금 코알라가 잎에 상처를 냈어, 너희들도 조심해’ 정도가 아닐까? 신호를 받은 잎은 좀 쓴 물질을 뒤섞어서 초식동물이 한 나무를 너무 탐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사는 데 별 지장이 없을 것이다.
공기 푸르게 하는 유칼립투스나무
공교롭게도 경기도 용인에 가면 물푸레마을이 아파트 이름인 곳이 있다. 아파트가 들어선 청덕동을 품은 백화산에는 예로부터 물푸레나무가 많았고 거기서 유래한 탄천에 맑고 푸른 물을 보탠 데서 연유한 이름이다. 지금도 물푸레나무의 쿠마린이 섞인 푸른 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지 모르겠다. 자연계에 보기 드문 파란색을 동경해 작가들은 파랑새를 애써 찾고 노래도 부른다. ‘풀빛이 마냥 푸를 때/우리의 웃음 푸르렀고…’(서유석 노래 ‘미소’ 부분)
체온만큼 더웠던 여름이 언제 지났는지 모르게 하늘 푸른 가을이 오고 있다. 어딘가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물푸레나무 곤봉 끝에 매단 무지갯빛 색실이 허공을 장식하는 무리춤(群舞)을 보고 싶다.
김홍표
아주대학교 약학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