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적대적 두 개 국가와 평화적 두 개 국가
북한은 2023년 12월 노동당 전원회의와 2024년 1월 최고인민회의에서 ‘적대적 두 개 국가’ 노선을 전면에 내세웠다. 남한을 더 이상 동족이나 통일 대상이 아닌 ‘적대적 국가’로 규정한 것이다. 대남·통일기구를 해체하고 대적사업국(제10국)을 신설했다. 남북관계를 민족 내부 사안이 아닌 대외 외교 사안으로 바꾼 것이다. ‘우리 민족끼리’ 대신 ‘적대국가’라는 개념이 공식 문서에 담았다. 2024년 10월 개정 법률에도 남한을 ‘적대국’으로 규정한 조항이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영구 분단화를 선언한 셈이다.
북한의 구상은 자국 이익을 반영한다. 첫째, 체제 결속이다. 남한을 주적으로 규정하면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주민통제가 쉬워진다. 둘째, 군사 우위 전략이다. 핵무력 등 군사력 강화를 정당화할 수 있다. 셋째, 외교 명분이다. 남한을 미국 일본과 같은 진영으로 묶어 대미 협상에서 ‘직접 당사자’ 지위를 강화한다.
그러나 문제점도 분명하다. 남북대화 통로가 닫히면서 협상의 유연성을 잃는다. 제재 완화 가능성도 스스로 줄인다. 단기적으로는 내부 결속 효과가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불만이 체제 위협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국제사회에서 ‘분단고착 세력’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진다. 외교 신뢰도가 추락한다.
북한, 사실상 영구 분단화 선언
최근 한국 내부에서 ‘평화적 두개 국가론’이 논의된다. 현실을 인정하되 적대가 아닌 공존을 제도화하자는 구상이다.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꾼다. 남북을 국가 대 국가로 다루며 상호 존중을 전제로 삼는다. 군사충돌을 억제하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한다. 기후·보건·생태 등 비정치적 부문과 인도적 분야의 협력 통로를 넓힌다. 국제사회에 차이점을 인정하고 공통점을 넓혀나가는 ‘공존 프레임’을 제시해 불필요한 군사적 긴장을 낮추려는 전략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상도 한계가 있다. 첫째, 헌법적 문제다. 대한민국 헌법은 통일지향을 명시하고 있다. 남북을 ‘두 개의 국가’로 인정하는 담론은 헌법적 정체성과 충돌한다. 둘째, 탈북정책, 민족 내부 거래, 유사시 북한 지역 개입을 스스로 차단한다. 셋째, 국내 정치적 소모전이다. 진보·보수진영 모두에서 이견이 크다. 넷째, 안보 현실이다. 북한 핵무력 체제에서 ‘평화적 두 개 국가’를 제도화하기 어렵다.
남북한의 대립된 구상을 비교할 때 독일의 경험은 중요한 성찰과 통찰을 준다. 1970년대 동독은 ‘2민족 2국가론’을 주장했다. 국가 정체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서독과 분리된 독자생존을 모색한 것이다. 서독은 원칙과 실용을 겸비한 ‘특수관계론’을 내세웠다. 1972년 ‘기본조약’을 체결해 상호 존재를 인정하고 ‘선린 관계’ 원칙에 합의했다. 1973년 두 국가는 유엔에 동시 가입했다. 그러나 서독은 내적으로 동독을 별개의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헌법상 한 민족의 일부로 규정했다. 헌법재판소도 “분단의 최종 승인”이 아니라고 판시했다.
이러한 차이는 통일의 경로를 갈랐다. 동독은 분단 고착화를 추구했지만 서독은 특수관계론을 바탕으로 교류를 확대했다. 다양한 접촉과 교류는 동독 주민에게 서독 체제의 매력을 직접 체감하게 했다. 일관된 동방정책과 국제 환경의 변화는 과정으로서의 통일인 평화통일을 앞당겼다. 두 국가 관리와 민족 특수성이 동시에 작동한 결과였다.
한국은 동서독의 경험에서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현실인식과 통일지향을 동시에 유지해야 한다. 대외적으로는 두 국가 관리 프레임으로 군사충돌을 억제한다. 내부적으로는 헌법에 명시된 통일지향을 분명히 한다. 둘째, 제도적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위기관리를 위한 상시 채널, 군사충돌 방지 장치가 필요하다. 셋째, 인도적 협력을 제도화해야 한다. 작은 교류가 장기적 신뢰의 자본이 된다. 넷째, 군비통제의 부분 합의를 통해 긴장을 단계적으로 낮춘다. 다섯째, 국제 협력의 틀을 설계해야 한다.
분단관리와 통일지향 투트랙이 정답
결론은 명확하다. ‘두 개 국가’의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 동시에 ‘통일지향의 특수관계’를 지워서도 안 된다. 대외적으로는 분단 관리, 대내적으로는 통일지향이라는 ‘투트랙’이 정답이다. 분단을 관리하되 분단의 고착화를 방지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북한의 정책변화에 대응하여 어떤 선택을 할지는 결국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