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약세에도 따로 노는 원화 환율
26일 코스피 2%대 급락 … 금리 격차·무역 불안이 겹쳤다
로이터에 따르면 최근 한미 무역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원화 약세가 가속화됐다. 미국은 한국에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금을 일본과 유사한 조건으로 집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은 “이 조건을 수용하면 금융위기 재연이 불가피하다”며 미 연준과의 통화스와프 체결을 요구했다. 협상이 결렬될 경우 한국산 수입품에 25% 관세가 부과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시장에서는 미국 요구대로 현금 이전이 이뤄질 경우 연간 1000억~1200억달러 규모의 달러 수요가 새로 발생해 환율에 상당한 상방 압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KB증권은 3500억달러 투자가 현실화되면 향후 3년간 원화가 매년 달러당 100원씩 추가 약세를 보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한 외환 딜러는 “이 자금이 실제로 이동하면 원화는 즉시 1450원까지 밀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금리 격차 역시 부담이다.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2.50%에 머물고 있다. 미국이 9월 금리를 한 차례 인하했지만 인플레이션 부담이 남아 추가 인하는 쉽지 않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이에 따라 한미 금리 격차가 의미 있게 좁혀지지 못하고, 이는 외국인 자금 유출과 원화 약세를 장기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포트폴리오 흐름도 원화 약세를 키우고 있다. 개인과 기관의 미국 주식·채권 매수 확대와 연기금·보험사의 해외 비중 증가는 구조적인 달러 수요를 만들었다.
한국은행도 8월 금통위 회의에서 “거주자의 해외 투자 자금 수요가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에 원/달러 환율이 상승했다”고 설명하며, 실제로 국내 투자자의 해외 자금 이동이 환율 압력을 높였음을 지적했다.
당국이 통화스와프 등 완충 장치를 운용하고 있지만, 변동성 국면에서는 선제적 달러 매수가 환율을 끌어올리기 쉽다.
무역·정책 불확실성도 위험 프리미엄을 자극한다. 미국이 한국에 대규모 투자 집행을 요구하고, 협상이 결렬될 경우 25%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수출 환경에 불확실성이 커졌다. 반도체와 자동차 등 주력 산업이 직접 영향을 받을 수 있어 시장의 경계심이 높아졌다. 수출 의존도가 큰 한국은 이러한 무역협상 진전 여부에 따라 투자심리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결국 최근 원화 약세는 금리 격차, 무역 협상 불확실성, 해외 포트폴리오로의 자금 유출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다. 원화 약세가 수출기업의 환산 이익을 높일 수 있으나, 급격한 변동은 외국인 투자 이탈과 밸류에이션 할인으로 코스피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한 달러 부채가 많은 금융회사들의 상환 압박이 커져 금융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