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경제학자의 스테이블코인 경고

2025-10-01 13:00:03 게재

규제공백이 키운 그림자금융

공공 인프라만이 진짜 해법

프랑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장 티롤이 29일(현지시간) 이코노미스트 기고를 통해 스테이블코인 열풍에 경고음을 냈다. 준비금 투명성과 상환 규정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오히려 금융 불안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결제 혁신의 답이 사적 토큰이 아니라 국가가 구축하는 공공 결제 인프라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미국은 7월 스테이블코인 규제법인 ‘지니어스(GENIUS)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스테이블코인의 제도권 편입 속도가 빨라졌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 가족이 관여한 민간 발행 USD1 사례와 테더의 발행 규모가 지난 12개월 사이 큰 폭으로 늘어난 점을 사례로 들어 민간 토큰에 공공의 신뢰를 기대하는 접근 자체가 구조적으로 취약하다고 평가했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등 안전자산에 연동한다는 설계로 가격 변동성을 낮추고, 기존 은행과 카드·국제송금망 대비 빠르고 저렴한 결제를 내세운다. 그러나 티롤은 과거 파생상품과 서브프라임 증권처럼 ‘안전한 듯 보이는’ 금융 혁신이 위기를 키운 전례를 상기시켰다.

머니마켓펀드처럼 겉으로 안정성을 내세워도 신뢰가 흔들리면 순식간에 환매 사태가 발생할 수 있고, 결국 정부가 중소상공인과 가계를 보호하거나 시스템 리스크를 막기 위해 구제에 나설 유인이 커진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기대는 발행사와 플랫폼의 위험추구를 부추긴다.

그는 또한 준비금과 감사를 둘러싼 현실의 허점들을 짚어냈다. 테더는 준비금 표시 문제로 제재를 받았고 완전한 외부감사를 제공하지 못했다. 써클은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당시 준비금 일부가 위험에 노출됐다. GENIUS 법의 상환 관련 조항도 모호하다. 환급 요청을 어떻게 이행할지, 유동성 위기 때 지급정지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지가 불명확하면 작은 의심이 대규모 이탈로 번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알고리즘 방식이긴 했지만 테라USD 붕괴는 의심이 연쇄 붕괴로 이어지는 연결 구조를 생생히 보여줬다.

또한 수익률이 낮은 안전자산에 묶인 발행사는 더 높은 수익을 좇아 위험을 키울 유인을 갖게 된다. 은행보다 규제가 약한 만큼 금리 위험과 예금보험의 사각지대가 넓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니어스법은 발행사의 이자 지급을 금지했지만, 코인베이스와 페이팔 같은 플랫폼이 리베이트 등으로 우회 보상을 제공하는 구조는 허용하고 있어 사실상 그림자 금융을 키울 수 있다고 봤다. 은행 수준의 자본과 유동성 규제는 받지 않으면서 공적 안전망은 기대하는 왜곡이 생긴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정책 환경도 위험을 증폭시킨다는 점이다. 현 미국 행정부가 암호자산에 우호적인 인사를 규제기관에 배치하고 달러 수요 확대라는 지정학적 유인을 갖고 있는 만큼, 감독이 느슨해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유럽 등 다른 지역이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엄격히 규제하려 할 경우 통상 갈등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제기했다.

티롤은 결제가 더 빠르고 저렴하며 연중무휴로 작동하고 조건에 따라 자동 정산되는 기능 자체는 필요하다고 인정했다. 다만 이를 구현할 주체는 공공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브라질과 중국의 디지털 결제 시스템, 유로존의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준비가 그 예다. 국가가 기본 인프라를 깔고 표준화된 인터페이스를 개방해서 민간이 그 위에서 혁신을 쌓도록 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그의 결론은 명확하다. 스테이블코인은 최신 유행처럼 보이지만 금융 안정성을 해치고 소수에게 이익을 집중시킬 위험이 크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적 토큰의 확산이 아니라 공공 인프라 기반의 개방형 결제 플랫폼 구축이다. 지니어스법 이후의 공백과 이해상충을 방치한다면 다음 위기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는 경고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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