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대법원, ‘사법권 독립’ 방패막이 삼지 말라
조희대 대법원장 등의 출석없이 29일 청문회가 진행됐다. 조 대법원장은 이미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의견서를 제출해 불출석을 통고했었다. 청문회가 진행 중인 재판에 대한 합의과정 해명을 요구하고 있어서 출석할 수 없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진행 중인 재판’이란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사건 재판을 말한다. 헌법 103조 등을 불출석의 근거로 의견서에 나열했다. 과연 ‘사법권 독립’을 보장한 헌법 103조가 정당한 청문회 불출석 사유가 될 수 있을까?
논의를 ‘사법권 독립’의 정확한 정의를 내리는 것에서부터 출발해보자.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사법권 독립이란 법관이 어떠한 내·외부적 간섭을 받음없이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하는 ‘판결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으며, 넓은 의미로는 ‘법관의 신분보장’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본다. 즉 정확히 말하면 ‘사법권 독립’이란 ‘사법부 독립’이 아니라 ‘법관의 독립’이다.
조 대법원장 불출석은 ‘사법권 독립’의 ‘오용’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현대 민주국가들은 ‘자유민주주의’를 헌법상의 기본원리로 채택하고 있다. 이때 자유민주주의는 ‘사법권 독립’을 그 본질적 구성요소 중의 하나로 하고 있다. 법원 내·외부의 각종 영향력으로부터 독립된 판사야말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 보장의 최후보루로서 꼭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독립된 판사만이 헌법 제27조가 국민에게 부여한 재판받을 권리, 그 중에서도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철저히 보장해 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측면에서 ‘사법권 독립’은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자유민주주의나 국민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그러면 ‘사법권 독립’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결국 사법부나, 사법부 엘리트 판사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도 아니며,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라고 헌법이 법관들에게 준 헌법적 수단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조 대법원장이 청문회 불출석의 근거로 사법권 독립을 든 것은 ‘사법권 독립’의 ‘오용’에 해당한다.
조 대법원장은 불출석 의견서에서 그 외에도 합의과정의 비공개를 규정한 법원조직법 65조와 국정감사나 조사가 계속 중인 재판에 관여할 목적으로 행사돼서는 안된다고 규정한 국정감사법 8조 등을 불출석의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국민들이 국회 청문회를 통해 조 대법원장으로부터 듣고 싶은 것은 이 대통령 파기환송심의 상세한 내용이나 합의과정에 대한 세세한 설명이 아니다. 대법원에서 사건배당도 하기 전에 이미 재판기록을 봤다든가,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에 이 사건을 회부하기도 전에 이미 전원합의체 기일을 지정했다든가 하는 중요한 절차 위반 의혹들에 대한 설명이다. 이에 대한 설명이 어떻게 재판 합의과정의 비공개를 규정한 법규정이나 재판에 관여할 목적의 국정조사 등을 금지한 법규정에 위반된다는 말인가.
오히려 대법원 스스로가 먼저 나서서 이러한 국민적 의혹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사법권을 위임받아 행사하고 있는 대법원이 가져야 할, 국민의 공복으로서의 올바른 태도가 아닌가.
결과적으로 이 사건이 대법원 소부에 배당된 지 2시간 만에 전원합의체에 회부됐고, 1달에 1번 열리던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합의 기일을 이틀 간격으로 두 차례 열어 사건이 접수된 지 9일 만에 대법원에서 판결이 선고됐다.
국민의 신뢰 얼마나 얻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이런 초고속 유죄취지 파기환송 판결이 혹시 헌법 24조가 보장하고 있는 대통령 후보에 대한 국민들의 선거권을 침해하려 한 것은 아닌지 국민들은 묻고 있다. 이러한 의도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사법부가 행정부 수장을 정하려 한 것으로서 삼권분립 원리를 위반한 것이 아닌가. 이러한 태도가 국민들의 사법부 불신을 더 넓고 깊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토크빌이 불후의 고전이 된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밝혔듯이 “사법부의 힘과 권력은 엄청나긴 하지만, 여론의 힘”이다. 현 대법원은 사법권 독립을 방패막이로 삼기 전에 과연 법원이 국민의 신뢰에 바탕을 둔 ‘여론의 힘’을 얼마나 얻고 있는지 먼저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