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1천억불, 닷컴버블 경고
영국 투자거물 앤더슨 “AI 기업가치 급등 불안” … 납품사 금융지원 구조 우려
앤더슨은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AI에 거품이 뚜렷하다고 보긴 어려웠다”며 “그러나 오픈AI의 기업가치가 1년도 안 돼 1570억달러에서 5000억달러로 급등하고, 경쟁사 앤트로픽(Anthropic)의 가치도 6개월 새 세 배 가까이 뛴 것은 분명히 불안한 신호”라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엔비디아를 “존경의 대상”이라 표현했지만, 엔비디아가 최대 고객인 오픈AI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는 구조는 투자자 입장에서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특히 앤더슨은 엔비디아가 오픈AI 데이터센터 건설 자금을 사실상 지원하는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내 나이대의 사람에게 ‘벤더 파이낸싱(vendor financing, 상품이나 서비스를 파는 업체가 고객이 그것을 살 수 있도록 자금을 빌려주는 금융 방식)’이라는 말은 좋지 않은 기억을 불러온다”고 말했다. 실제로 1999~2000년 통신 장비 업체들이 이 방식을 통해 통신사들의 인터넷 망 확장을 돕다가 과도한 부채를 떠안으면서 닷컴버블 붕괴의 불씨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앤더슨은 “지금 상황이 당시와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닮은 점이 있다”며 “안심할 수만은 없다”고 지적했다.
앤더슨은 과거 엔비디아, 테슬라, 아마존에 대한 초기 투자로 영국 자산운용사 베일리 기포드(Baillie Gifford)를 세계적 투자사로 키운 인물이다. 그는 2023년부터 이탈리아 아녤리(Agnelli) 가문의 자산운용사 최고투자책임자로 복귀하여 현재 11억달러 규모의 링고토 이노베이션 전략(Lingotto Innovation Strategy) 펀드를 이끌고 있다.
그는 올해 초 엔비디아 비중을 줄이고 중국 배터리 기업 CATL을 포트폴리오에 담았다. CATL은 홍콩 증시 상장 이후 주가가 급등해 엔비디아를 제치고 최대 보유 종목이 됐다.
이번 경고는 불과 1년 전 그가 “엔비디아는 낙관적 시나리오에서는 시가총액이 10조달러 이상 오를 수 있다”고 했던 발언과 대조적이다. 현재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은 약 4조5500억달러에 이른다.
그는 미국 정치와 산업 정책에도 비판을 이어갔다.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중국과의 분리정책과 재생에너지 투자 축소는 장기적으로 에너지와 자동차 산업을 뒤처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앤더슨은 “10년 뒤 미국을 방문한다면 지금의 쿠바를 찾는 기분일 수 있다”며 “첨단 기술 산업 하나만 남고, 자동차 산업은 30년 전 수준에 머물며, 에너지 시스템은 불안정하고 세계 흐름에 뒤처질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함께 링고토 전략을 이끄는 모건 사메트(Morgan Samet)는 “AI 혁신의 첫 물결이 시작됐다. 자율주행차, 헬스케어 등 실물 산업과의 결합이 큰 투자 기회일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이번 발언은 이탈리안 테크 위크(Italian Tech Week)를 앞두고 나왔다. 행사에는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스텔란티스 회장 존 엘칸 등도 참석해 기술과 산업의 미래를 논의할 예정이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