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동맹 현대화, 이제는 ‘노(No)’라고 말할 때

2025-10-02 13:00:02 게재

최근 워싱턴의 여러 외교안보 싱크탱크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이구동성으로 한국의 대책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과거 미국의 외교관들이나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주로 동맹이나 한·미·일 협력에 대한 한국의 입장이 무엇인지를 물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트럼프정부의 조지아주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에 대한 부당한 구금이나 3500억달러 현금투자 요구에도 한국 내의 반발이 생각보다 약한 것이 의아한 모양이었다.

현재 한국이 당면한 가장 큰 외교안보의 리스크는 북한 문제도 아니고 역내 안보불안도 아닌 동맹이다. 사실 동맹의 문제는 새삼스러운 이슈는 아니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작금의 상황이 위험수위에 가깝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국사회에서 동맹 자체가 국가적 논란의 대상이 되는 아이러니는 동맹이 종종 수단 아닌 목적으로 인식되며 때로는 종교적 신념으로까지 강요되는 것에 기인한다.

동맹은 ‘국가 간 협정을 통해 서로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협력하기로 약속한 관계’다. 동맹의 전제는 공통의 적이고 동맹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공통의 적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이다. 따라서 동맹의 문제해결 능력에 집중하지 않고 외형이나 명분에 집착하는 대응은 문제해결을 더욱 어렵게 할 뿐이다.

동맹은 목적 아닌 수단, 환경 변화 직시하자

다른 한편으로는 동맹을 둘러싼 환경변화를 외면하는 분위기도 문제를 악화시킨다. 한국전쟁 당시와 달리 지금은 중국과 러시아가 한반도에서 전쟁을 지원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동맹의 직접적 이유인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은 이제 더 이상 우리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북한 비대칭 전력의 핵심인 핵무력의 경우 한국보다는 미국에 더 위협이 된다는 점에서 한국전쟁 당시와는 다르다. 현재 한국에게 위협이 되는 북한의 전력은 오히려 사이버공격과 같은 비전통적 영역이다.

동맹 내부 환경변화도 무시할 수 없다. 미국의 패권이 쇠퇴한 데 비해 한국은 세계 10위 경제대국이자 세계 5위의 군사강국으로 분류될 만큼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섰다. 따라서 미국이든 한국이든 기존의 동맹관계가 뭔가 불편하고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한국에서는 대체로 전시작전통제권의 전환을 비롯한 자주국방의 이슈로 분출되었고 미국에서는 방위비 분담금 인상이나 전략적 유연성과 같은 요구로 나타났다.

동맹의 환경과 동맹 내부 역학관계 모두가 변화된 지금 ‘동맹 현대화’ 이슈는 이제 외면하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게 되었다. 한미동맹이 체결된 지도 70여 년이 지났다. 동맹도 시대에 적응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자주국방은 동맹의 약화가 아니다. 오히려 동맹의 업그레이드다. 만약 동맹 때문에 동아시아에서 전쟁에 연루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고, 외환보유고의 80%를 동맹국에 바쳐야만 존속되는 동맹이라면 이제 동맹의 성격과 내용을 적극적으로 재검토할 때가 되었다.

사실 세계 5위의 군사력으로 매년 북한의 국내총생산(GDP)보다 훨씬 많은 국방비를 지출하면서 미군 없이는 안보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그러니 미국에서도 ‘전략적 유연성’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동맹은 공짜가 아니다. 미국에 의존할수록 중국과의 분쟁에 연루되고 우리가 부담해야 할 몫이 늘어나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미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줄이고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한 자율적 안보태세를 강화하는 것만이 우리의 이익을 반영할 수 있는 유일하고 확실한 길이다. 우리가 강해야 동맹 파트너로서의 매력이 커지는 것이다.

자주국방이 곧 동맹의 업그레이드

세계 그 어느 동맹국보다 훌륭한 기지를 제공하고 많은 방위비를 분담하면서도 항상 궁색한 입장에 처하는 것은 스스로를 폄훼하고 지나치게 매달리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전략경쟁에 몰두해 있는 지금, 미국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한국주둔이 절박하다.

어쩌면 지금은 한미동맹을 맹목적으로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의 우려를 적극적으로 드러냄으로써 동맹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경고를 보내고 동맹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이는 것이 역설적으로 동맹을 더 오래 유지할 수 있는 길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동맹의 현대화’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정한범 한국국제정치학회 차기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