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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를 어떻게 만들까

2025-10-10 13:00:02 게재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이 0.7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1명 미만이다.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의 악순환은 국가의 지속가능성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해법은 하나다.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실천하는 것이다.

먼저 답을 찾은 곳은 일본의 지방 소도시들이다. 시마네현 오난정(邑南町)은 인구 1만 명의 농촌 소도시이지만 2011년 ‘일본 제일 육아도시’를 선언했다. 행정 전반의 초점을 아이 키우기 지원에 맞췄고, 2018년에는 임신부터 출산과 보육까지 통합 지원하는 핀란드식 모델 ‘네우보라(Neuvola)’를 본떠 ‘육아세대 종합지원센터’를 만들어 임신·출산·육아를 원스톱으로 지원했다. 부모들은 육아와 관련된 모든 서비스를 언제든 편리하게 이용하며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게 되었다.

2023년 여름에 현장을 방문했다. 10년간 오난정에서는 매년 평균 70명의 아이가 태어났고, 98병상 규모의 작은 의료시설 오난공립병원이 24시간 소아과·산부인과 진료를 보장한다고 들었다. 아픈 아이를 돌봐주는 전용 어린이집이 따로 있어 맞벌이 부모가 휴가를 내지 않아도 되는 세심한 행정에 놀랐다. 아이 키우는 데 더 필요한 도움을 지속적으로 파악하고 있고, 최근 맞벌이 젊은 부부의 제안을 받아 가사도우미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단순한 출산 장려금 차원을 넘어 아이를 키우는데 필요한 삶의 전반을 세심하게 챙기고 있는 것이다. 작은 소도시 오난정에서 “온 마을이 아이를 키운다”는 말이 현실이 되고 있음을 목격했다.

임신·출산·육아 원스톱 지원 시스템 실현

오카야마현 나기정(奈義町)은 다른 길에서 출발했다. 2000년대 초 일본 정부가 소규모 지자체를 통합하려 할 때, 주민투표로 합병을 거부하고 독립을 선택했다. 소멸위기에 놓인 인구 5000명 작은 도시가 택한 전략은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 만들기’였다.

2003년 ‘엔젤플랜’을 수립하고 임신·출산·육아 전 단계를 패키지로 묶는 종합지원정책을 시작했다. 의료비 무상화, 다자녀 지원금, 신혼부부 주택 등 ‘경제적 지원’을 강화하고, 동시에 ‘사회적 지원’ 플랫폼도 구축했다. 통합형 플랫폼으로 구축된 ‘나기 차일드홈’은 보육과 부모지원, 커뮤니티, 일자리 연계를 한데 묶어 맞벌이 부부는 물론 지역사회 전체의 든든한 기반이 되고 있다.

더 놀라운 건 지방의회 의원들이 자발적으로 보수를 줄여 육아예산을 확보한 사실이다. 한정된 예산으로 육아 지원행정을 강화하기 위해 지방의원들이 먼저 허리띠를 조였고, 주민들은 공공시설 공사 현장에 자원봉사로 참여해 지방정부의 예산을 절감하고 있었다. 나기정의 모든 구성원이 하나되어 노력한 결과 2014년 합계출산율이 2.81로 올랐고 2019년에는 전국 평균의 두 배인 2.95를 기록하면서 ‘나기의 기적’이라 불렸다.

이 외에도 인구 30만명 규모의 효고현 아카시시(明石市)는 고교 3학년까지 의료비 무료, 둘째 자녀 이후 보육료 무료, 중학교 급식비 무료, 기저귀 정기배송 같은 ‘5대 무상화’ 정책으로 유명하다.

170만 인구의 후쿠오카시는 대도시 중 드물게 합계출산율 1.5 안팎을 유지하고 있는데 핵심은 ICT 기반의 육아 행정이다. 모자수첩을 디지털화한 ‘앱(母子モ)’을 도입해 임신·출산·육아 정보를 부모·의료기관·행정이 공유하고, 유아 건강검진도 전산화했다. 보육시설에는 ‘코드몬(CoDMON)’ 시스템을 도입해 등하원 기록과 부모 연락, 아이 건강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며, 사물인터넷 센서로 교실 환경과 영아의 수면 상태까지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한다. 이런 디지털 행정과 함께 국공립 보육 인프라를 확충해 대기 아동 문제를 해소한 것이 후쿠오카 성공의 비결이다.

작은 마을에서 대도시에 이르기까지 조건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분명하다. 아이를 키우는 데 드는 비용과 불안을 줄여주는 정책이 출산율 방어에 효과적이라는 점이다.

삶 전체를 세심히 돌보는 종합행정 필요

우리나라에서도 변화 조짐이 있다. 강원도 화천군은 2024년 합계출산율이 1.51명으로 전국 평균의 두 배에 달했다. 대학생 자녀 등록금 전액 지원, 월 최대 50만원의 주거비 보조, 초·중·고생 해외연수, 공공 산후조리원 같은 과감한 교육·주거·의료 패키지를 시행해 주민 만족도가 90%를 웃돈다. 농촌의 작은 지방정부도 정책의 방향에 따라 출산율을 높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길은 있다. 지혜와 세심함이 함께 필요하다. 정책이라기보다 삶의 방식을 전환하는 일이다. 임신·출산·육아 전 과정을 따뜻하게 감싸주고, 교육·의료·주거·문화까지 삶 전체를 세심히 돌보는 종합 행정이 필요하다. 정치적 결단이 선행되고 주민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일본의 크고 작은 도시들, 그리고 한국의 화천군이 이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 만들기, 그것이 우리의 내일을 밝혀줄 희망이다.

정 석 서울시립대교, 도시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