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일본의 AI-인간 협업 고도화 실험이 시사하는 것

2025-10-10 13:00:01 게재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지적활동을 지원하는 수준을 넘어서 일부 작업을 주도하는 것도 가능해지면서 인력 부족에 대한 고민이 많은 일본기업도 디지털 혁신에 한층 주력하는 모습이다. 고령의 숙련기술자의 제조 노하우가 인구감소 및 고령화와 함께 산업 현장에서 빠르게 소실될 우려도 있어서, 숙련근로자의 지식을 AI를 통해 보존하려는 노력도 강화되고 있다.

일본기업이 근로자의 노하우나 지식을 자산으로서 중시하고 AI와의 협업체제도 모색하는 배경에는 장기불황기에 근로자를 육성하는 투자를 줄임으로써 일본 산업이 쇠퇴하고 경쟁력도 약해졌다는 반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30년 장기불황 과정에서는 생산성 증가율이 급격히 떨어진 후 정체되어 최근에야 회복세를 나타냈다. 하지만 앞으로 노동 투입의 감소 압력을 고려할 경우 생산성을 계속 높여야 성장잠재력을 유지해 실제 경제성장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말 이후 일본기업은 현금 축적 중시의 경영으로 설비투자나 인적자본투자를 억제하고 비정규직을 확대했다. 하지만 그런 흐름은 고용의 질에 부정적 영향이 나타나 생산성이 정체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본정부는 기업의 지배구조를 혁신하고 인적자본투자 실적도 공시하도록 하면서 생산성 향상을 가져올 수 있는 인적자산 중시 경영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AI와의 협업 통한 생산성 향상에 주력

사실 일본기업 중에서도 최근 AI 에이전트와 숙련근로자와의 협업을 통한 생산성 향상에 주력하는 사례가 나와 주목받고 있다. 예를 들면 공장 자동화가 정해진 공정에서의 업무를 자동적으로 수행하는 수준이라면 상황변화에 따라 공정 자체의 개선이나 조정을 AI가 주도하는 시스템도 모색되고 있으며, 인간 근로자는 AI의 감독 역할이 중요해지는 한편 새로운 숙련 기술을 계속 개발하게 된다.

이러한 AI 활용을 통한 업무의 자동화·자율화에는 숙련된 근로자의 판단이나 묵시적인 감, 지식을 데이터로 표출하고 형식적인 지식으로 전환하면서 AI를 훈련하고 또 인간은 새로운 암묵지를 창조하는 순환적인 지식창조 경영이 중요해지고 있다.

세계 최초로 AI에 의한 원유-석유제품 전환 장치의 자동 운전을 개시한 일본 최대 정유사인 에네오스(ENEOS) 가와사키 공장에서는 930개 센서를 활용해 24개의 운전 인자를 AI가 상시 감시하고 있다. 이 AI는 베테랑 근로자의 노하우를 학습한 것으로 성과가 나타나기까지 약 5년 정도 소요되는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다고 한다. 진정으로 효과적인 AI를 만들기 위해서는 하드웨어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인간의 숙련 기술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필요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정유공장 자동화를 위해서는 태풍부터 폭염까지 모든 날씨에 대응해서 밸브를 조절해 중대한 사고를 예방하는 숙련 근로자의 감, 암묵지를 형식화된 지식, 수치 모델로 전환해 AI에 구현하는 것이 필요했다고 한다.

도요타자동차는 마이크로소프트와 협력해서 GPT-4o 기반의 생성형 AI 에이전트 플랫폼인 O-Beya를 개발해 생산라인이나 공장의 투자 비용을 절반으로 감축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베테랑 기술자의 암묵지를 디지털화해 젊은 엔지니어도 고도의 기능을 즉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진동 연비 설계 등 9종 이상의 항목을 검토하는 전문 AI 에이전트가 활동하면서 질문에 따라 적절한 에이전트가 답변하는 방식이다. 근로자가 현장에서 직접 AI 모델을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미지 분석을 통한 접착제 도포 검사의 자동화, 사출 성형기 이상 감지 등의 작업에 활용되고 있다.

히타치제작소는 현장에서 일하는 숙련자의 암묵지를 생성형 AI로 재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Nikkei, 2025.6.4.) 직원에 대한 인터뷰와 행동 관찰을 통해 업무 프로세스를 구조화하고, 제어장치에 이상이 발생했을 때 대응책을 제시하는 AI를 개발했다.

가시화하기 어려운 현장의 지혜는 미국의 대형 테크기업들이 수집하기 어려우며, 제조업에 강점을 가진 일본 기업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AI 전략이 될 수 있다. 히타치에는 “이 작업에 30년 넘게 전념한 베테랑도 있으며, 이들이 업무의 요령을 이야기해 주면서, AI가 이해할 수 있도록 구조화 했다”고 한다.

인간 능력 확장의 전략적 수단

AI 시대의 인간과 AI의 협업은 단순한 자동화를 넘어 인간 능력 확장의 전략적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다. 고베대학교의 고토 마사시 준 교수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응하기 위해 개인이 능동적으로 행동하고, 조직 내에서는 ‘프로스펙티브 센스메이킹(Prospective Sensemaking)’과 ‘센스기빙(Sensegiving)’을 통해 의미를 구성하고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Nikkei, 2025.7.16.~7.29)

프로스펙티브 센스메이킹은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예측하고 그에 대한 의미를 구성하는 인지적 과정으로,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 행동 방향을 미리 설정하려는 시도다. 센스기빙은 조직 내 리더나 영향력 있는 인물이 구성원들에게 특정 사건이나 변화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이며 센스메이킹을 유도하는 행위라고 할 수도 있다.

숙련된 근로자가 가진 이러한 능력이나 암묵지는 신입사원 등에게 연속적으로 전수되어야 조직이 발전하지만 AI에 의한 자동화는 신입사원 등에게 암묵지 축적 기회를 줄이는 문제가 있다. 시니어와의 협업과 피드백을 통한 경험 학습이 필수적이며, 챗봇 등 AI 도구는 보완수단으로 활용된다.

일본기업 중에는 숙련근로자의 작업 스킬을 AI에 전수하고 신입사원이 가상현실 기술도 활용하면서 빠르게 숙련 노하우를 AI로부터 학습하는 방식도 나오고 있다.

물론 인간과 AI의 역할 분담이나 AI를 활용하는 스킬도 고도화될 필요가 있다. 역할 분담에 있어 향후의 AI 성능과 혁신성의 발전을 기준으로 인간과 협력하는 새로운 방식이 제안된다. 이는 기술적 정확도뿐만 아니라 조직 내부에서의 심리적 신뢰 형성도 요구된다.

인간과 AI의 오류를 상호 보완해 예측력을 높이고 창의적 작업에서도 반복적 협업을 통해 아이디어 품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 AI 에이전트는 자율적 작업 수행자로 진화하며 조직 내 팀원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있다. 인간과 AI의 역할을 통합적으로 조망하는 ‘메타 전문성’이 미래 경쟁력에서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스킬 중심의 인력관리 제도 모색

일본정부도 이러한 인간과 AI의 협업 고도화에 대비해 스킬 중심의 인력 관리 제도 보급을 모색하고 있다.

경제산업성은 금년 5월에 보고서(스킬 기반 인재육성)를 통해 디지털 전환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의 직무·자격중심 평가 방식에서 벗어나 실제 능력과 기술을 기반으로 인재를 선발하고 보상하는 구조를 만들고 개인이 취업 승진을 위해 자신의 경력을 주도적으로 설계하고, 재교육과 기술 습득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유도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경제산업성은 기술 정보의 표준화·데이터화·공유인프라를 구축하고, 기업은 이를 활용해 인재를 채용·배치·승진하는 체계를 마련해 학습 노력과 결과가 실질적으로 보상받는 사회를 지향하겠다는 것이다.

AI 시대에 대응해 새로운 지식창조 체제와 인재육성책을 강화해 생산성향상과 함께 경제성장을 달성하려는 일본의 시도는 우리에게도 참고가 될 것이다. 제조 강점의 디지털화 AI화, AI와 인간의 협업체제 고도화에 주력하는 한편 이를 뒷받침하는 시스템과 함께 그 기반이 되는 반도체 로봇 소프트웨어의 고도화에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지평 한국외국어대 특임강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