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금 패권으로 달러 체제에 도전

2025-10-10 13:00:02 게재

상하이 금 허브화

브릭스 연대 활용

금값이 사상 처음 온스당 4000달러를 돌파했다. 정치 불확실성과 물가 압력, 금리 하향 기대, 미 정부 부채 우려가 겹친 결과다.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하기 어려운 대내외 정책도 안전자산 선호를 키웠다는 평가다. 은 가격도 50달러선에 근접했다.

때문에 중국은 금값 상승을 전략적 기회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8일(현지시간) 블룸버그는 분석했다.

중국은 지난 10여 년간 금 보유량을 꾸준히 늘려 세계 6위 규모의 비축량을 확보했고, 올해는 상하이금거래소의 첫 해외 금고를 홍콩에 열어 자체 금융 허브 기능을 강화했다. 각국 중앙은행과 국부펀드의 금을 중국 보세창고로 유치하고, 런던처럼 보관 중인 금의 거래와 대여를 상하이에서 활성화해 기존 국제 금융 중심지를 잠식하겠다는 전략이다.

스탠다드차타드는 준비자산 다변화와 지정학적 불안, 대체 결제 수단 확산이 맞물리면서 중국의 금융 영향력 확대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금은 중국의 여러 전략 목표를 동시에 뒷받침한다. 위안화 신뢰도를 높이고 홍콩 금융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무엇보다 제재를 무기로 삼는 미국의 금융 지배력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 베이징의 후퉁리서치는 중국의 금 보유 확대가 위안화의 장기적 신뢰도에 안전판을 제공한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스테이블코인 등 대체 자산도 검토 대상에 올려두고, 미국의 규제 강화 움직임을 지켜보며 정책 선택지를 넓혀가고 있다.

세계 금 수요의 핵심 축은 각국의 중앙은행이다. 지난 10년간 금값이 4배가량 오르는 동안 상장지수펀드(ETF)의 보급과 중앙은행의 매수세가 상승을 이끌었다. 지난해 중앙은행 수요 비중은 20%를 넘어섰다.

최근 민간의 금 ETF 보유량은 2020년 정점에 미치지 못해 추가 자금 유입 여지도 남아 있다. 골드만삭스는 민간이 보유한 미국 국채의 1%만 금으로 이동해도 금값이 50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추정했다.

중국이 염두에 둔 비교 대상은 런던이다. 런던은 순도 기준과 가격 지표, 방대한 수탁 금고를 바탕으로 최대 현물 허브 지위를 지켜왔다. 현재 8800톤이 넘는 금이 보관돼 있어 영국 중앙은행은 뉴욕 연준 다음으로 큰 수탁기관으로 꼽힌다.

중국이 우호국의 금을 상하이 연계 금고로 유치한다면 시장 발언권을 키우고 달러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 브릭스 확대와 제재 회피 수요도 중국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베네수엘라 금이 영국 중앙은행에서 동결된 사례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남아공은 최적 입지만 갖춰진다면 금 보관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고, 세르비아는 지정학적 위험을 이유로 금의 국내 환수를 선호한다는 입장이다.

러시아의 경험도 중국에 시사점을 줬다. 러시아는 2014년 이후 달러 노출을 줄이며 금을 축적해 2022년 외환보유액 동결 사태에도 금융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전쟁 이후 금값 급등은 완충장치 역할을 했다. 작년 영국 외무개발부가 의뢰한 연구는 금을 러시아의 전략 자원이자 전시 교역 핵심 수단으로 보고했다.

중국은 2015년 이후 여러 차례 금 보유량을 늘려왔고 최근에는 11개월 연속 순매입을 이어갔다. 중국의 미국 국채 보유량은 2015년 말 대비 41% 감소했다. 공식 통계만 봐도 금은 중국 외환보유액의 9% 미만으로 세계 평균 20%에 훨씬 못 미친다. 추가 매입 여력이 충분하다는 의미다.

다만 위안화 표시 원자재 파생상품의 유동성은 아직 달러 기준 상품에 크게 뒤처져 있고, 금 시장에서도 상하이는 런던 대비 유동성 격차가 크다.

그럼에도 국제 질서의 균열은 중국에 기회가 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확대와 잦은 제재, 정치적 불안정은 금의 매력을 더욱 키웠다. 중국이 보관과 결제, 거래를 아우르는 금 생태계를 구축해 미국 중심 금융 시스템과 병행하는 대안 체제를 만들려는 시도는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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