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산업 위기극복, 원하청 사회적 대화가 답이다
경사노위 ‘철강업종 원하청 협력을 위한 좌담회’ … 원하청 노사·정부 참여해 안전·미래전환·이중구조 등을 논의해야
철강산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 장기화되는 국내 건설경기의 침체, 세계 철강 수요의 둔화에다 미국과 유럽연합의 철강 관세 조치로 철강업계의 위기감이 커지는 상황이다. 철강산업의 위기는 노사의 위기일 뿐만 아니라 국가의 위기로도 직결된다. 결국 노사 그리고 정부가 함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위기 극복 방안 중 하나는 원·하청 노사관계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이 국회 통과 이후 우리나라 노사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우리나라 산업의 대부분이 그렇듯 생산은 수직적인 원·하청 분업구조로 이뤄지고 있다. 생산은 공동으로 하지만 근로조건은 차이가 크다. 임금·후생복지부터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안전까지 대부분이 그렇다. 그렇다보니 원하청 노사관계는 갈등과 불안요소가 상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내일신문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는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경사노위 회의실에서 ‘철강업종 원하청 협력을 위한 좌담회’를 열었다. 원하청에 얽혀있는 이중구조와 현장의 어려움 그리고, 업종별 사회적 대화의 가능성을 철강산업에서 모색해보자는 취지다. 권혁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 주재로 열린 좌담회에는 조양래 포스코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 이수출 유일노조 위원장, 임성근 광양지역 기계·금속·무창노조 위원장, 황중율 전국철강산업노조협의회 사무처장,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 전형배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참석했다.
좌담은 철강산업의 위기, 특히 하청사업장에서 체감하는 현장이야기부터 시작됐다. 임성근 위원장은 “생산량이 불안정하고 전체적으로는 줄고 있다”며 “일감이 적어지면 일하기는 편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일자리가 없어질까 두려움이 앞선다”고 말했다.
황중율 사무처장은 “공장 가동률이 거의 50~60% 수준까지 떨어지고 있다 보니 일부 하청에서는 주7일 조업에서 주5일 조업으로 바뀌면서 일감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당장 구조조정은 아니더라도 하청의 임금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임 위원장은 “하청의 임금은 생산량에 비례하는 ‘요율’방식인데 생산량이 줄다보니 임금도 같이 줄고 있다”고 말했다.
박명준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산 저가 철강의 수입 증가와 무역장벽, 탄소중립 정책 등 외부 요인이 위기의 배경”이라며 “산업이 근본적인 전환기에 놓여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원하청 노사 모두 머리를 맞대고 함께 풀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원하청 노사관계 화두로 떠오른 산업안전 = 철강산업에서 안전은 원하청 모두의 주요한 근로조건 중 하나이고 생산방식의 특성상 원하청 협력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함께 고민해야할 주제다. 참석자들은 먼저 인원감축 자제와 형식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수출 위원장은 “하는 일은 같은데 인원을 감축하게 되면 당연히 위험에 더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임 위원장은 “형식적인 서류보다는 노후화된 설비 교체, 작업중지권 확보 등 실질적인 조치가 우선”이라고 말했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 위반(불법파견) 리스크 때문에 오히려 산업안전 관리에 소홀해 질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임 위원장은 “원청에서 하청의 산업안전에 대해서도 충분히 지원해야 하지만 원청의 지휘를 받게 되면 ‘근로자 지위 확인소송’ 등 불법파견에 해당될 우려 때문에 더 소극적으로 접근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권혁 교수는 “2020년 산업안전보건법의 전부 개정 당시의 주된 정신도 최소한 안전만큼은 도급 계약관계에서 예외로 하자는 것”이라며 “원하청이 ‘안전공동체’로서 서로를 배려하고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안전에 대한 실질적인 원하청 소통채널을 주문했다. 그는 “원청과 하청이 공동 테이블을 만들어서 실질적·정례적인 대화 장치가 절실하다”며 “원하청 사이 힘의 관계를 고려하면 원청의 역할을 촉진할 수 있는 정부 또는 지자체가 함께 하는 논의 틀도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전형배 교수는 “원하청 소통채널 구축은 국정과제로 입법이 예상되지만 대규모 사업장은 입법 전에 선제적으로 원하청 산업안전보건위원회(산보위)를 운영해 모델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안전문제를 다루는 ‘안전소통 패스트트랙’을 제안했다.
조양래 수석부위원장은 “산보위를 하더라도 위원들의 전문성이 있어야 하는데 전임시간을 별도로 보장해줘야 실질적으로 운영될 것”이라며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이라는 법적 제도도 결국 작업중지 등 권한이 없다보니 유명무실하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원청이 요즘 안전인력을 많이 뽑았는데 실질적으로 효과를 내려면 협력사에 안전인원을 배치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 사무처장은 “조업 중 돌발사고가 생겼을 때 조업을 중지하고 안전한 상태에서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만 갖춰져도 중대재해는 크게 줄 것”이라고 말했다.
◆여전한 철강산업 원하청 이중구조 = 철강산업 근로조건의 원하청 간 이중구조 문제는 그동안 재하도급의 최소화, 원청의 기술지원 및 복리후생 강화, 에스크로 결제제도(결제대금 제3자 예치) 도입 등이 논의됐지만 하청에서 체감하는 격차는 아직까지 여전했다.
이 위원장은 “2021년 경사노위 위원장까지 참여해 포스코 원하청 상생협력 논의를 하면서 임금을 원청의 80%로 맞추고 동등한 복리후생을 요구했고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지만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며 “약속이 이행되지 않으니 결국 근로자 지위 확인소송 같은 사법적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 위원장은 “임금·단체협약도 원청 노사 교섭이 끝나야 협력사와 기성금을 정하는 방식이다 보니 조금만 지연돼도 임단협이 해를 넘기고 임금이 낮아지는 결과가 초래된다”고 말했다. 이어 “2022년에는 원청이 적자가 나서 협력사 전체가 임금을 다 위임해 동결한 적이 있었는데 성과가 나니까 협력사는 뒷전이었다”며 “성과가 나면 최소 금액이라도 공유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권 교수는 “원청이 하청노동자들에게 뭔가 지원해 효용이 높다면 양성화해야 하는 데 불법파견 문제 때문에 해주고 싶어도 못해준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원하청 노사관계는 수렁에 빠진다”고 지적했다.
황 사무처장은 “노란봉투법 통과로 인해 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해 하청의 교섭 요구가 많아지고 혼란스러워질 가능성이 있다”면서 “교섭요구가 분쟁이 되고 법원으로 가서 장기화되는 것보다 원하청이 참여하는 대화 틀을 합리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노란봉투법 개정이후 원청이 실질적 지배력을 가지면 교섭 당사자가 될 수 있는 만큼 격차를 줄이려면 궁극적으로 하청노동자들이 받아야 마땅한 정당한 대가를 임금체계상으로 어떻게 정하고 갈 것인지 명문화해야 한다”며 “원청사의 보다 적극적인 교섭대응과 원청 노조의 포용적인 연대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조 수석부위원장은 “노조간 연대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공감하지만 지속가능하려면 원청 노사에게만 책임을 집중시키는 것이 아닌 노사정이 함께 안전 등 공통의제에서부터 시간을 갖고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하청 노사 협력, 업종 사회적 대화를 시작하자 = 참석자들은 한목소리로 이런 문제들을 공론화할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업종별 사회적 대화는 2007년 노사정위원회 법 개정 이후 업종별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한 이후 관광업 배달업 공공부문 해운업 등에서 시도됐다. 2020년에는 관광산업 생태계 유지와 고용안정, 배달노동 종사자 산재보험 사각지대 해소 등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 등을 도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윤석열정부에서는 조선업종 관련 원하청 상생협력 방안이 정부주도로 논의됐으나 실질적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원하청 노사만의 논의로는 한계가 있다”며 “정부가 참여해 전체적인 대화의 구속력을 높여야 원하청에 산적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황 사무처장은 “철강산업이 위기를 맞아 중량감 있는 철강그룹이 참여해 이 위기를 극복할 대화체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업종 대화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서 원청노사, 하청노사, 정부가 함께 모이는 포괄적인 협의 틀을 구축해 안전·미래전환·이중구조 등에 대한 허심탄회한 논의를 시작으로 사회적 대화의 배를 띄워야 한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사회적 대화는 ‘공격과 방어’의 관점이 아니라 공동의 목표를 위해서 서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솔직하게 찾는 과정”이라며 “경사노위가 철강 등 주요 산업위기의 해법마련을 위한 공론장으로서 역할해주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