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살롱
감기약 안전하게 복용하기
57세 직장인 동수씨는 십여년 전부터 고혈압 약을 꾸준히 복용하고 있다. 약 덕분에 혈압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관리되었지만 최근엔 조절이 잘 안돼 그는 요즘 다소 건강에 예민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코가 막히고 목이 아픈 증상이 생겨 동네 약국을 찾았다. “감기약 하나 주세요.” 별다른 설명 없이 약을 받아 복용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뒷목이 불편하고, 얼굴이 달아오르며 혈압이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감기 증상은 조금 나아졌지만 고혈압 환자인 그에게 감기약 속 특정 성분이 혈압을 자극한 것이다.
5년 전 정년퇴임한 명호씨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최근 전립선비대증 진단을 받은 그는 소변 줄기가 약하고 밤에도 두어 번 깨서 화장실에 가는 일이 잦았다. 그러던 중 콧물이 나고 목이 칼칼해 약국을 찾았다. 그는 역시 아무 생각없이 “감기약 하나 주세요”하고 약을 받아 복용했다. 하지만 소변이 시원하게 나오지 않아 화장실에서 한참을 씨름해야 했고, 이튿날엔 거의 소변이 안 나와 응급실에 가게 되었다. 전립선비대증 증상이 있는 명호씨에게 감기약은 오히려 더 큰 고통을 안겨준 셈이다.
기존 질환 악화시킬 성분도 들어 있어
두 사람의 사례는 감기약이 결코 가볍게 볼 수 있는 약이 아님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감기약은 콧물 기침 두통 등 다양한 증상을 한꺼번에 완화하도록 만들어진 ‘복합제’ 형태가 많다. 여기에는 항히스타민제와 비충혈 제거제(코막힘 완화제)가 흔히 들어 있다.
문제는 이 성분들이 기존 질환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고혈압 환자의 경우 코막힘 완화제로 쓰이는 슈도에페드린이나 페닐에프린 같은 성분이 혈관을 수축시켜 혈압을 올리고 맥박을 빠르게 할 수 있다. 이미 고혈압 약을 복용 중인 환자에게는 예기치 못한 위험요인이다.
반대로 전립선비대증 환자에게는 항히스타민제가 방광 수축을 억제해 소변을 막히게 하고, 비충혈 제거제가 전립선과 방광목 근육을 수축시켜 배뇨 곤란을 악화시킨다. 명호씨처럼 평소에도 배뇨가 불편한 환자가 이런 성분을 복용하면 소변이 전혀 나오지 않아 응급실로 실려가는 상황도 생길 수 있다.
문제는 많은 환자들이 이런 사실을 모른 채 약을 복용한다는 점이다. 동수씨와 명호씨처럼 “감기약쯤이야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넘어가지만, 실제로는 감기 증상보다 더 큰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 특히 중장년층 이후에는 고혈압 당뇨병 전립선비대증 같은 만성질환을 가진 경우가 많아 감기약 선택에도 주의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약을 구입할 때 반드시 자신의 질환과 복용 중인 약을 약사에게 알려야 한다. 아니면 감기약이라도 약사에게 복용법과 주의사항을 물어보는 게 좋다. “약을 복용하는 동안 금해야 할 것이 있나요?” “이 약의 효과와 해로운 영향은 무엇인가요?”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뭐가 있나요” 등등.
둘째, 증상에 꼭 맞는 단일 성분 약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두통이나 발열에는 해열진통제만, 콧물이 주 증상이라면 항히스타민제만, 기침이 심하다면 진해제만 복용하는 식이다. 종합 감기약은 편리하지만 불필요한 성분이 들어 있어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셋째, 증상이 오래가거나 심해지면 병원을 방문하는 것이 안전하다.
약국에서 감기약을 구입할 때 단순히 “감기약 주세요”라고 말하기보다 자신이 겪는 증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복용 중인 약이나 기저질환을 함께 알려주는 것이 안전하다. 예를 들어 “열은 없고 콧물만 심하다” “혈압약을 복용 중이다” “전립선비대증이 있다”와 같은 짧은 정보만 덧붙여도 약사는 위험성분을 피하고 더 적절한 약을 고를 수 있다.
또한 여러 약국을 전전하기보다 단골약국을 정해 꾸준히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골약국은 환자의 복용 이력과 질환 정보를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어, 새로운 약을 권할 때도 훨씬 정확하고 안전한 복약 지도가 가능하다. 감기약처럼 흔한 약일지라도 환자가 먼저 정보를 제공하고 약사와 꾸준히 신뢰 관계를 쌓는 것이 부작용을 예방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구체적 증상 약사에게 얘기해야
결국 동수씨와 명호씨 사례가 말해 주는 교훈은 단순하다. 고혈압 환자와 전립선비대증 환자는 감기약조차 반드시 약사와 상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소해 보이는 감기약 하나가 만성질환 환자에게는 위험한 함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약은 단순히 증상을 가라앉히는 도구가 아니라 환자의 몸 상태와 긴밀히 맞물린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작은 습관의 변화가 큰 불편과 위험을 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