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배터리 규제에 미국 데이터센터 전력망 비상

2025-10-13 13:00:03 게재

수입 리튬배터리 65% 중국산

공장 원료수급차질 불가피

중국이 배터리 수출 제한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희토류에 이어 배터리를 대미 통상협상의 지렛대로 삼겠다는 신호다. 전력망 안정과 AI 데이터센터 전력 확보를 위해 에너지 저장장치가 절실한 미국 기업들에게 직격탄이 될 전망이라고 12일(현지시간) 블룸버그는 분석했다.

새 조치는 11월 8일부터 시행되며, 에너지 저장용 대형 리튬이온 배터리, 양극·음극재, 배터리 제조 장비 등 중국이 우위를 가진 광범위한 공급망 품목을 망라한다. 기존과 마찬가지로 중국 상무부의 수출 허가제를 통해 개별 기업을 선별적으로 통제할 수 있어, 베이징이 필요할 때 수출을 전략적으로 무기화할 수 있다는 평가다. 블룸버그 리서치에 따르면 중국의 배터리 공급망 지배력이 크기 때문에 제한 범위가 넓지 않아도 미국 기업들이 빠르게 압박을 체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리서치 보고에 따르면 올해 1~7월 미국이 수입한 전력망용 리튬이온 배터리 가운데 약 65%가 중국산이다. 이번 조치는 이 부문에 직접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AI 확산으로 미국의 전력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 보고서는 미국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가 2017년 대비 2023년에 두 배 넘게 늘었고, 2028년까지 최대 3배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중국은 미국의 첨단 반도체 수출 통제로 AI 붐이 제약을 받는 반면, 미국은 데이터센터를 늘리려 하는데 전기부터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형 배터리는 잉여 재생에너지를 저장해 수요가 몰릴 때 방전함으로써 정전 위험을 줄이고 계통 안정성을 높인다. 10년 전만 해도 미미했던 미국의 유틸리티용 배터리 누적 설치량은 2024년에 26기가와트(GW)에 도달했다. 텍사스주에서는 지난해에만 4GW가 새로 가동돼 약 300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수준을 확보했다.

블룸버그는 향후 10년간 미국 전역에서 최대 136GW의 추가 배터리 용량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상당 부분을 중국에서 조달해야 하며, 단기간 내 다른 국가로 대체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 내 배터리 생산능력이 늘고 있지만 내수 수요를 따라가기에는 부족한 데다, 중국의 새 제한은 미국 공장에도 파급될 수 있다.

중국은 전 세계 음극재 생산능력의 약 96%, 양극재의 85%를 사실상 통제하고 있다. 이 핵심 소재가 제한 품목에 포함된 점은 해외 기업 의존도가 높은 현실을 감안할 때 큰 격상이라는 평가다.

미국 남동부에 잇따라 들어선 배터리 공장들도 원재료 조달 차질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업계에서 나온다. 테슬라와 파나소닉의 네바다 기가팩토리에서 생산을 총괄했던 전문가들은 해당 지역 공장들의 원료 흐름이 이번 조치로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식시장도 반응했다. 플루언스 에너지 주가는 금요일 12% 넘게 급락했고, 테슬라도 5% 하락했다. 두 회사 모두 일부 배터리 부품에서 중국산 의존도가 있다. 네바다에 조립공장을 둔 드래곤플라이 에너지는 글로벌 공급망이 이미 빡빡한 상황에서 중국의 정책 변화가 복잡성을 키우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중국산 부품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국산화와 기술 혁신을 서두르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중국 배터리 업계 역시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내수 과잉 생산을 겪는 가운데 해외 시장 의존도가 커진 탓이다. 벤치마크 미네랄 인텔리전스는 중국이 새 규제를 실제로 어떻게 집행할지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진단했다. 동시에 중국은 통상 협상 지렛대 확보와 함께 핵심 기술의 해외 유출을 막아 장기 경쟁우위를 공고히 하려는 의도가 뚜렷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이 배터리 수출 지렛대를 실제로 얼마나 강하게 행사할지는 통상 협상 진전에 달렸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중국은 6월 트럼프 행정부와 합의에 도달한 뒤 희토류 대미 선적 재개를 허용한 전례가 있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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