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평화선언’ 중동 신새벽 여나
이스라엘·하마스 빠진 선언 … 인질석방과 휴전 성과에도 불안 여전
그러나 분쟁의 당사자인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자리에 없었고, 선언문 내용 역시 비공개로 남아 실행력과 구속력에 대한 회의론도 제기된다.
어쨌든 이번 평화 선언은 가자지구를 둘러싼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2년 가까운 전쟁을 끝내는 외교적 전기임에는 분명하다. 2023년 10월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양측의 충돌은 1200여명의 이스라엘인과 6만7000여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사망케 했다. 가자지구는 초토화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한 이번 합의는 전쟁을 종식하고 인도적 교환을 성사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 실제로 휴전 발효 후 하마스는 마지막 생존 인질 20명을 이스라엘에 석방했고, 이에 맞춰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수감자 약 1900명을 풀어줬다. 이 중 250명은 종신형을 선고받은 중범죄자였다. 737일 만에 귀환하는 인질석방 장면은 이스라엘 전역에서 생중계됐고, 시민들의 열렬한 환호로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 의회 연설에서 “새로운 중동의 역사적 새벽이 시작됐다”며 휴전 합의의 상징성을 부각했다. 이어 “이제 이 승리를 평화와 번영으로 전환해야 할 때”라며 하마스 무장 해제와 가자 재건, 팔레스타인 기술관료 정부 수립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이 중재한 이번 합의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거래”라고 표현하며 노벨평화상 수상 자격이 충분하다고도 암시했다. 또한 “하마스는 무장 해제될 것이고, 이스라엘은 더 이상 위협받지 않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구체적 실행 계획은 불확실하다. 휴전 합의는 1단계에 불과하며, 이후 단계에서는 하마스의 무장 해제, 이스라엘군의 단계적 철수, 팔레스타인 민정 정부 구축 등 훨씬 민감한 정치·군사적 과제들이 대기하고 있다. 하마스는 무장 해제를 조건부로 제시했으나, 이스라엘은 가자 내 무기와 터널이 제거되지 않는 한 철수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상호 불신이 깊은 상황에서 평화의 지속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번 회담에서 또 하나의 이목을 끈 장면은 트럼프 대통령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의 마흐무드 아바스 수반 간의 화해 악수였다.
트럼프는 과거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선언하고 PA에 대한 원조를 중단하는 등 팔레스타인 측과 대립각을 세워왔다. 심지어 아바스 수반은 지난 유엔 총회에 미국 비자 거부로 참석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회담에서 두 사람은 카메라 앞에서 미소를 띤 채 악수하고,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화해의 신호를 보냈다.
트럼프는 “당신을 만나 반갑다”며 아바스를 지목했고, 회의장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는 향후 PA가 가자지구 통치에 복귀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전망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이런 상징적 장면들이 실질적 변화로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트럼프의 평화 구상은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명시적으로 보장하지 않는다. 다만 PA가 일정 기간 개혁을 거친 후에야 자결권과 국가 설립을 향한 “신뢰할 수 있는 경로”가 열릴 수 있다고만 언급했다. 이는 국제사회가 요구해 온 두 국가 해법과도 거리가 있어 팔레스타인 내부 반발을 피하기 어렵다.
재건과 안전보장 문제도 만만찮다. 가자지구는 현재 대부분 폐허 상태이며, 유엔은 일부 지역을 ‘기근 상태’로 규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가자지구는 잔해의 10배다. 청소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건 비용은 최소 3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이미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부유한 아랍 국가들에 재정 지원을 요청한 상태다. 유럽연합(EU)과 프랑스는 가자 내 민정 경찰 훈련 강화와 인도주의 회의 개최를 예고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