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정부, 월가 대출여력 2조6000억달러 푼다
은행 자본요구비율 14% 줄여
JP모건이 가장 큰 수혜자
미국의 금융 규제 완화로 월가 은행들의 추가 대출 여력이 2조6000억달러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파이낸셜타임스(FT) 12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컨설팅업체 알버레즈앤마살은 미국 정부의 규제 개편이 은행의 보통주 자본요구비율(CET1)을 평균 14% 낮출 것으로 분석했다. 이로 인해 은행들의 대출 여력이 크게 늘어나고, 다른 지역 규제 당국에도 완화 압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이 신문은 내다봤다.
FT는 이번 완화로 미국 주요 은행들이 즉시 1400억달러의 자본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알버레즈앤마살의 페르난도 데라모라 공동대표는 “트럼프 행정부가 대규모 규제 완화의 문을 열고 있다”며 “이 조치는 막대한 금융 여력을 풀어주어 경제와 기업이익 모두를 끌어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완화로 은행들의 주당순이익이 35%, 자기자본이익률이 6%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가장 큰 수혜자는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다. FT에 따르면 JP모건은 이번 완화로 묶여 있던 390억달러의 자본이 풀리고, 주당순이익은 31%, 자기자본이익률은 7%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규제 완화가 본격화되면 미국 은행들이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에너지 인프라 등 대규모 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더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미국 중앙은행(Fed) 내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뚜렷하다. 올해 은행감독 부의장으로 취임한 미셸 보먼은 대형은행에 부과되는 추가 자본 의무를 완화하고, 매년 시행되는 ‘재무건전성 평가(스트레스테스트)’ 제도를 손질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는 과도한 규제가 기업대출을 사모펀드나 대체금융시장으로 밀어냈다고 지적해왔다.
지역별로는 온도 차가 있다. 알버레즈앤마살은 영국이 미국을 따라 은행 자본요구 비율을 8%가량 낮출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유럽연합(EU)은 1% 추가 상향이 예상되며, 스위스는 최대 33%까지 강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스위스 정부는 금융안정을 이유로 자본 확충을 추진 중이며, UBS는 최대 260억달러의 추가 자본이 필요할 수 있다고 FT는 전했다. 데라모라 대표는 “이런 흐름으로 미국 은행은 경쟁력이 강화되고 영국은 현 수준을 간신히 유지하겠지만, 유럽과 스위스 은행들은 더 뒤처지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규제 완화를 두고 의견은 엇갈린다. 올리버와이만의 휴 반 스타니스는 “미국에서는 인공지능과 에너지 인프라 등 대규모 투자 수요를 금융이 뒷받침해야 한다”며 “이번 조정은 은행들이 이 자금 흐름에 발맞추도록 돕는 조치”라고 평가했다.
반면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금융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고 경고했고, 앤드루 베일리 영국 중앙은행(BOE) 총재는 “규제를 손보더라도 금융시스템의 안전망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미국의 규제 완화는 은행의 대출 능력과 이익을 확대하며 주주환원 여지도 넓히는 반면, 유럽과 스위스는 보수적 자본정책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금융규제의 차이가 커지면서, 미국 중심의 자금 조달과 대출 경쟁력이 한층 강화될지 주목된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