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반딧불이의 빛을 내 곁으로
오래전 가족과 강원도의 한 산골에 갔을 때였다. 어스름한 저녁 무렵 산책 중 우연히 반딧불이 무리와 마주쳤다. 따뜻한 황록색으로 물든 빛의 반점들이 허공을 떠도는 모습은 난생처음 본 은하수처럼 경이롭게 느껴졌다. 한편으로 이런 은은한 빛을 내 옆에 두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동아시아의 민간 설화에 종종 반딧불이를 모아 등불처럼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 같다.
반딧불이의 희미한 빛은 루시페린이라는 유기화합물에서 비롯된다. 루시페린은 루시페라제 효소의 도움으로 산화하며 빛을 낸다. 분자의 빛 방출이 대개 그렇듯이 산화된 루시페린의 여기 상태에 놓인 전자가 안정한 바닥 상태로 돌아오며 두 상태의 에너지 차이가 빛으로 방출된다. 반딧불이 외에도 야광버섯을 포함해 빛을 내는 생물은 많지만(특히 심해 생물 중 빛을 내는 종류가 많다) 발광원리는 비슷하다.
생물발광의 효율, 즉 생체가 소비하는 화학 에너지를 빛으로 바꾸는 비율은 매우 높아서 많은 과학자들의 관심을 끌었고, 그 원리를 파헤치며 다양한 응용 분야에 적용하기 위한 연구도 활발했다. 그중 하나는 빛을 내지 않는 생물을 발광생물로 바꾸려는 노력이다.
가령 1980년대 일군의 과학자들은 반딧불이의 루시페라제 효소 유전자를 한 담배식물에 넣어서 발광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를 이용하면 발광유전자를 특정 유전자에 연동시켜서 해당 유전자가 발현될 때 빛을 내도록 만들 수도 있다. 즉 발광유전자를 특정 유전자 발현의 표지로 활용하는 셈이다.
유전자 조작 등으로 인공적 발광식물 만들어
유전자 조작 기법을 활용한 획기적 연구 결과가 2020년에 발표되었다. 한 국제공동연구팀은 빛을 내는 버섯의 발광 유전자 네 개를 담배식물에 삽입해서 지속적으로 발광시키는 데 성공했다. 버섯유전자는 식물 내 카페인 산을 루시페린으로 바꾸고 이를 다시 카페인 산으로 변환하는 순환구조를 담당했다. 해당 식물은 별도의 관리 없이 육안으로 확인될 정도의 밝은 녹색 빛을 지속적으로 냈다는 면에서 이 연구는 많은 관심을 끌었다. 당시 연구진은 이후 스타트업 기업을 만들었고 작년부터 발광하는 페튜니아 꽃을 개발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발광식물을 만드는 또 하나의 방법은 형광물질을 식물에 직접 주입하는 것이다. 형광물질이란 외부의 에너지를 받아 흡수한 후 일부를 빛으로 내는 물질군을 뜻한다. 대표적 전기조명인 형광등은 자외선을 빛으로 변환하는 형광물질을 이용한다(그래서 이름이 형광등이다).
올해 중국의 한 연구팀은 다즙 식물에 자외선과 청색광을 흡수하는 형광물질을 주입한 후 식물이 수 시간에 걸쳐 녹색광을 방출하도록 만들었다. 이때 사용된 형광물질은 사실 흡수된 에너지를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빛으로 방출하는 잔광 인광체다. 이 기법의 장점은 투입하는 발광물질의 종류를 바꿔 방출광의 색상을 다채롭게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형광물질의 효율적인 주입을 위해선 복잡한 내부구조를 갖는 식물 조직에 발광 입자를 제대로 확산시키기 위한 세밀한 작업이 필요하다.
생물학 분야에서 발광유전자는 생체 내 특정 유전자나 세포의 추적에 활용되어 왔다. 환경 분야에서는 토양이나 수중의 독성물질 감지 등 오염 감시에 활용하려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그런데 앞에 소개한 두 연구는 발광식물을 장식용 조명이나 장기적으로 기존 조명의 대체품으로까지 고려하고 있다. 물론 이런 목표가 가능하려면 발광식물이 내는 빛의 밝기가 충분해야 하고 오래 지속되어야 한다.
인류 역사를 보면 조명 기술의 혁신이 문명의 진화와 복잡하게 얽혀 상호작용을 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지방이 많은 물고기나 새를 말려 조명으로 사용하는 등 인류는 오랜 기간 가연성 재료를 연소해 빛을 얻어 왔다. 아크등과 백열등이 연 전기조명의 시대는 인류의 밤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밤생활(nightlife)이란 용어가 등장한 것도 이 즈음이다. 전기등의 등장으로 인류는 스스로 밤의 길이를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발광식물이 전기조명 일부 대체할 가능성
하지만 밤낮의 주기적 교대 속에 진화해 온 인류의 생체리듬이 야간조명으로 깨지면서 수면부족을 포함한 다양한 건강문제도 파생되고 있다. 발광식물의 잔잔한 빛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적어도 심리적 안정감의 면에서는 여러모로 유용할 것 같다. 일주기 리듬을 방해하는 청색광을 동반하지 않는 발광식물의 쓰임새는 수술을 앞둔 환자들의 대기실이나 수술 후 회복실의 조명처럼 다양한 분야에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유전자 조작이나 형광물질 주입이 식물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면밀한 검토는 발광생물의 조명 활용에 있어 충분조건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