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신 애치슨라인과 한국의 전략적 가치
애치슨 라인은 1950년 미국 국무장관 딘 애치슨이 발표한 미국의 극동 방위선이다. 미국의 알류샨 열도(알래스카와 캄차카반도 사이에 있는 섬들)에서부터 일본~오키나와~필리핀을 잇는 가상의 선을 의미한다. 이 선은 미국이 태평양 지역에서 군사적으로 방어할 의지가 있는 지역의 범위를 명시한 것으로 한국은 제외됐다. 일각에서는 애치슨라인 때문에 한국전쟁이 발발했다고 보기도 한다.
그후 75년이 지난 2025년 미국은 새 국방방위전략(NDS)으로 신 에치슨라인 선포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신 에치슨라인은 방위 뿐 아니라 경제동맹국을 가르는 지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일본 유럽연합(EU)과 각각 새로운 무역 프레임워크를 체결했다. 주요 산업품목에 대해 15% 관세 상한선을 설정했다. 대신 일본은 5500억달러, EU는 6000억달러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며 합의문에 서명했다.
반면 한국과 미국은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미국이 한국에게 3500억달러 규모의 ‘선불 투자’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외환보유액 약 4163억달러(10월 기준)의 84%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이다.
미국은 ‘동맹국 간의 공정한 분담’을 주장하지만 경제규모를 고려하면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일본의 외환보유고는 1조3413억달러다. 또 명목GDP는 일본(4.0조달러)과 EU(19조4000억달러)가 한국(1조9000억달러)의 각각 2배, 10배 이상이다. 이런 상황에도 한국에게 일본이나 EU와 유사한 투자액을 요구하는 것은 무역압박에 가깝다.
더구나 한국은 반도체 이차전지 조선 바이오 등 핵심 산업에서 미국 제조업 부흥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인텔의 반도체 협력,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의 전기차 배터리공장, 현대차의 조지아주 전기차 공장에 이은 루이지애나주 등에 280억달러 투자 계획 등은 미국이 ‘리쇼어링’ 정책을 추진하는 데 큰 힘을 보태고 있다.
그동안 한미동맹은 경제적 이해관계 뿐 아니라 안보와 가치의 연대로 이어져왔다. 한국은 첨단기술 협력, 대중국·러시아 견제 등에서 미국의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다. 미국이 한국경제의 숨통을 조인다면 결과적으로 자국의 글로벌 기반을 약화시키는 자충수가 될 것이다.
대화상대가 일방통행을 고집하는 게 현실이지만 한국은 협상과정에서 미국에게 협력의 질적 가치를 분명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 반도체 공급망 안정, 조선산업 부흥, 친환경 에너지기술, 바이오 등 미래산업 공동성장을 통해 미국의 산업부흥에 기여할 수 있음을 수치와 근거로 설득해야 한다. 한국이 가진 전략적 가치와 경제적 역량으로 신 애치슨라인이 조성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