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내년부터 24시간 증시 개장…주요국 거래시간 연장 논의
아시아 투자자 미 주식거래, 2017년 대비 7.8배 증가
시장 접근성 개선으로 글로벌 유동성 경쟁 치열 전망
한국도 연장 필요 … 노조·중소형 증권사 반대 ‘답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와 나스닥은 2026년 하반기부터 주요 주식거래소의 거래시간을 24시간으로 연장할 예정이다. 거래시간 연장은 각 국가를 대표하는 주요 거래소의 글로벌 경쟁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으로 영국 독일 홍콩 등 주요 국가에서도 거래시간 연장을 논의하는 중이다. 이는 단순한 ‘거래시간 확대’ 수준을 넘어 글로벌 유동성의 이동 경로와 투자 환경 자체를 바꾸는 중대한 전환점으로 글로벌 유동성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도 해외 투자자의 시장 접근성을 높이고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거래시간을 지금보다 더 길게 연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다만 한국거래소와 증권사 노조 반대와 중소형 증권사들의 반대로 거래시간 연장 논의는 답보 상태다.
◆글로벌 투자자 미 주식거래 급증 = 1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국이 주식시장의 결제 주기 단축(T+2→T+1)에 이어 거래시간 연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성복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주식시장 거래시간 연장 논의 동향과 과제’ 보고서에서 최근 주식 거래시간 연장 배경으로 글로벌 투자자의 수요 증가와 스마트폰의 보편화와 주식거래 플랫폼의 모바일화를 꼽았다.
먼저 글로벌 투자자의 미국 주식 거래대금 추이를 살펴보면, 올해 거래대금은 2017년 대비 2.8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아시아 투자자의 거래대금 증가 추세가 2017년 대비 7.8배 증가할 정도로 다른 지역에 비해 빠르게 증가했다. 작년 8월 초 야간 주식거래를 지원하던 대체거래소가 시스템 문제로 일시 중단된 사건을 계기로 아시아 투자자들의 야간 주식거래 수요가 강하다는 것을 확인한 후 뉴욕증권거래소와 나스닥은 거래시간 연장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
스마트폰의 보편화와 주식거래 플랫폼의 모바일화도 거래시간 연장의 중요한 배경이다. 모바일 주식거래 플랫폼은 개인투자자의 주식시장 진입장벽을 대폭 낮췄다. 스마트폰에서 위탁매매 계좌를 쉽게 개설할 수 있고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으며 소액으로도 주식투자에 참여할 수 있다. 더구나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투자 정보가 공급되기 때문에 개인투자자의 거래 수요를 지속적으로 유발할 수 있다.
◆아시아 투자자, 주간에도 편리하게 주식거래 = 미국 증시 거래시간 연장으로 글로벌 투자자의 시장 접근성은 대폭 개선될 전망이다. 특히 아시아 투자자의 경우 야간 거래가 아닌 24시간 거래도 일상생활 시간대인 주간에도 편리하게 미국 주식을 사고팔 수 있게 된다.
이 연구위원은 증시 거래시간 연장은 자국 투자자의 시장 참여도 촉진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개장 시간대와 근로 시간대가 겹쳐 개별적 상황에 따라 주식거래에 제약을 받았지만, 거래시간이 연장될 경우 시간적 제약이 완화되기 때문이다.
이는 글로벌 유동성의 흐름이 완전히 바꿀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주요 주식거래소 간 글로벌 유동성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고, 결국 투자 매력도가 높은 주식시장으로 글로벌 유동성이 편중되거나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영국의 런던증권거래소그룹(LSEG)은 올해 7월부터 거래시간 연장 검토에 착수했다. LSEG는 미국이 24시간 거래를 시작할 경우, 단기적으로는 유동성이 미국으로 빠져나가고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IPO(기업공개) 수요까지 미국으로 쏠릴 가능성을 우려했다. 글로벌 유동성의 미국 집중화를 우려한 것이다.
이 같은 흐름은 유럽뿐 아니라 홍콩 등 아시아 주요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각국 거래소들이 거래시간을 연장하지 않을 경우 ‘시간 격차’만큼 경쟁력이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 결제 주기 단축 논의 착수 … ‘12시간 거래’ 시작 = 한국도 대응에 나서며 결제 주기 단축 논의에 착수했다. 거래일로부터 이틀 뒤 결제가 이뤄지는 ‘T+2일’ 시스템을 ‘T+1일’로 줄여 거래부터 결제까지의 기간을 하루로 앞당기는 내용이다. 최근 한국예탁결제원과 한국거래소는 주식 결제주기를 T+1일로 단축하기 위한 사전 준비 차원에서 ‘참가 기관 대상 워킹그룹’을 구성했다. 논의 결과는 추후 금융당국에 보고될 예정이다.
글로벌 주식 시장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이 지난해 5월 결제주기를 T+1일로 단축하면서 전세계적인 결제주기 단축 논의를 촉발한 바 있다.
유럽연합(EU)과 유럽은 2027년 10월 적용을 목표로 약 10여개 이상의 업무 분과별 워킹그룹을 운영 중이며, 아시아도 홍콩을 필두로 T+1일 단축 논의가 시작됐다. 유럽이 논의를 본격화하면서 아시아 국가들도 글로벌 스탠다드로 정립되고 있는 T+1일 결제를 피하기 어려워졌다.
한국은 올해부터 12시간 주식거래도 시작했다. 국내 주식시장은 지난 3월부터 대체거래소(ATS)를 통한 12시간 거래를 시행 중이다. 이는 정규시장 오전 9시~오후 3시30분 체제에서 벗어나, 프리마켓과 애프터마켓을 통해 유동성을 확대하는 첫 단계였다. 이어 한국거래소도 코스피·코스닥 시장의 거래시간을 12시간으로 확대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런 가운데 해외 투자자의 시장 접근성을 높이고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거래시간을 지금보다 더 길게 연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 연구위원은 “뉴욕증시가 24시간 체제로 가는 가운데 12시간 거래만으로는 글로벌 유동성 경쟁에서 국내 투자자의 이탈이 더 빨라질 수 있고 해외 투자자의 유입이 줄어드는 등 뒤처질 가능성이 높다”며 “중장기적으로는 우리도 24시간으로 연장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이 연구원은 “거래시간을 늘리는 것 만으로는 글로벌 자본을 붙잡기 어렵다”며 “우리나라 상장기업의 투자 매력 제고와 제도적 기반 및 시장 인프라 강화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한국거래소의 거래시간 연장 논의는 노조 반대와 증권사 간 의견 차이로 난항을 겪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정규장 개편보다 현실성이 높은 단계별 확대안을 내부적으로 마련해 1단계로 오전 7~8시 프리마켓을 신설하고, 2단계로는 정규장·프리·애프터를 통합하는 ‘연속매매 보드’ 전환 방안을 내놨다.
하지만 거래소와 증권사 노조 측이 ‘근로환경 악화’를 이유로 거래시간 확대 전면 반대 입장을 고수해 사실상 논의가 중단된 상황이다.
증권사들도 의견이 다르다. 대형 증권사들은 긍정적 입장이나 중소형사들은 “전산·운용 인력의 근무 시간이 새벽으로 당겨지고, 시스템 업그레이드 비용이 과중하다”며 난색을 표했다. ‘효율성 대 비용’이라는 현실적 이해관계가 회원사 간 뚜렷하게 엇갈린 셈이다.
이 연구위원 또한 “거래시간을 지금보다 더 길게 연장할 경우 증권사까지도 물적·인적 비용을 추가로 부담해야 하고, 특히 시장 안정성을 위해 시장 운영과 감시에 필요한 시설과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 부담해야 할 추가 비용이 상당할 수 있다”며 “이를 고려할 때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거래시간 연장에 대한 국내외 투자자의 수요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