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연준의장이면 한국은 스와프 체결”
베센트 재무, 한미 협상 10일 내 타결 시사 … 트럼프는 “한국 3500억 선불” 또 주장
이번 협상은 단순한 무역 투자 차원을 넘어 통화 스와프와 같은 외환시장 안정 장치에 대한 논의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베센트 장관은 한국이 미국에 요청한 무제한 통화 스와프에 대해 “재무부 권한이 아닌 연방준비제도(Fed, 미국중앙은행)의 소관”이라면서도 “내가 연준 의장이라면 한국은 이미 싱가포르처럼 통화 스와프를 체결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 발언은 미국이 한국의 외환시장 불안 우려에 일정 부분 공감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베센트 장관은 한국의 요청이 실질적인 필요에 기반한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결정 권한은 연준에 있음을 명확히 했다. 다만 그는 싱가포르를 사례로 든 이유는 따로 설명하지 않았다. 미국은 2020년 3월 코로나19 위기 대응을 위해 싱가포르와 600억달러 규모의 통화 스와프를 체결한 바 있다.
베센트 장관은 연준 의장 인선 작업도 직접 주도하고 있다. 그는 제롬 파월 현 의장의 임기가 내년 5월 종료됨에 따라 차기 의장 후보군을 11명에서 5명으로 압축했으며 “추수감사절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면접할 수 있도록 3~4명을 추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때 유력한 차기 연준 의장 후보로 거론되었지만 현재는 재무장관직 유지를 희망하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도 재차 주목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날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3500억달러를 선불로 지급하기로 합의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일본은 6500억달러를 약속했다”고 밝혔지만 실제 일본의 대미 투자 규모는 5500억달러로 알려져 있어 트럼프가 수치를 착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이미 지난달에도 “한국과 일본으로부터 각각 선불로 수십억달러를 받는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한국은 아직 3500억달러에 대한 구체적인 투자 방식과 일정 등을 미국 측과 조율 중이다. 이번 협상이 최종 타결되면 한국 기업의 미국 내 반도체·배터리 공장 신·증설 등이 대규모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선불’이라는 표현은 현실과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주장은 오는 대법원의 상호관세 판결을 앞두고 관세 정책의 정당성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외에도 베센트 장관은 러시아산 에너지 문제와 일본 엔화 약세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그는 “러시아산 에너지를 구매하는 것은 곧 우크라이나 국민에 대한 공격을 돕는 일”이라고 지적하며 일본의 에너지 수입 구조를 간접 비판했다. 일본 엔화에 대해서는 “일본중앙은행이 적절한 통화정책을 취한다면 엔화는 스스로 균형을 찾게 될 것”이라며 인위적 개입보다 시장 자율에 무게를 뒀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