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석유공사에 ‘대왕고래’ 책임 떠넘기기
산업부장관 “삼성전자 시가총액 5배 규모” 부추겨
하베스트 인수 때도 공기업 평가지표 삼으며 압박
산업통상부가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 이른바 ‘대왕고래 유망구조’ 시추사업과 관련해 한국석유공사에 대한 감사원 공익감사를 청구하기로 했다.
산업부는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공공기관과 에너지업계 안팎에서 “스스로의 책임은 외면한 채 석유공사에만 책임을 떠넘기려는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산업부는 14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주요 의혹의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 관련 규정과 절차에 따라 신속히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3일 열린 산중위 국감에서는 “한국석유공사가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의 근거를 제공한 외부 자문사 ‘액트지오’를 선정하는 과정에 불투명한 정황이 있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의혹이 확산되자 산업부는 “감사원 감사로 투명하게 밝히겠다”며 발빠르게 대응에 나섰지만, 외부에서는 책임 회피성 조치라는 비판이 나온다.
공공기관의 한 관계자는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대통령과 산업부가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국가 핵심사업으로 분위기를 띄웠다”며 “정권이 교체되자 석유공사에게만 문제를 삼는 것은 명백한 책임 전가”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지난해 6월 윤석열 당시 대통령은 “동해 8광구와 6-1광구 일대, 이른바 대왕고래 구조에 최대 140억배럴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직접 발표했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도 “동해 석유·가스전의 매장가치가 현 시점에서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5배 수준”이라고 강조하며 강한 추진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이후 정부는 석유공사에 신속한 시추 준비를 지시하는 등 ‘국가 에너지 독립의 전환점’으로 삼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올 2월 첫 시추 결과 경제성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면서 사업 추진의 명분이 급격히 약화됐다. 나아가 정권이 교체되면서 대왕고래 사업은 탄력을 잃었다.
이에 대해 에너지업계 한 관계자는 “자원개발은 장기적이고 불확실성이 큰 사업인데, 정부가 단기간의 정치적 성과를 노리고 추진하면 이런 결과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감사 청구가 보여주기식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대통령실-산업부-석유공사 동시 감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한국석유공사가 2009년 캐나다 하베스트사를 매입한 사안에 대해서도 석유공사에만 책임을 전가하는 ‘나몰라라’식 형태를 보여준 바 있다. 석유공사가 추진한 하베스트사업은 41억달러(당시 환율기준, 약 4조3000억원)를 투자해 회수액이 400만달러(약 42억원)에 그친 대표적인 해외자원개발 실패사례로 꼽힌다.
이때도 문제가 되자 산업부는 자체적으로 조사단을 꾸려 석유공사의 부실인수를 지적했다. 검찰도 강 모 전 사장을 배임혐의로 구속기소했지만 이후 무죄판결이 나왔다.
하베스트 사업은 이명박 정부가 정권초기 5.1% 수준이었던 에너지 자주개발률을 2030년 30%까지 확대하겠다고 목표를 수립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정부는 대형화(외형확대)에 초점을 맞췄고, 자주개발률을 공기업 주요 경영평가지표로 삼았다. 그러다보니 리스크가 큰 자원개발사업은 부실사업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석유공사의 하베스트 인수 프로젝트는 이러한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국 2007년 부채비율 64%, 당기순이익 2000억원 이상으로 양호한 공기업이었던 석유공사는 2018년 부채비율이 2287%에 달하며 부실기업으로 전락했다. 6년째 완전자본잠식 상태인 석유공사는 지난해 부채 이자비용으로만 5660억원을 지출했다.
당시 석유공사 노조는 “석유공사의 하베스트 인수와 관련해 NARL정유공장 매입을 지시한 것이 당시 지식경제부를 포함한 정부였고 이 과정에 청와대가 직접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며 성역없는 수사를 촉구했다.
이어 “4조원 이상의 해외기업 인수 결정이 대통령 지시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상식적인 판단에 근거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해야 한다”면서 “산업부도 책임을 석유공사에 전가하는 등 지난 10년 동안 진실을 은폐해왔다”고 주장했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