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선출권력과 사법부 독립성의 허구적 대립
조희대 대법원장의 국감 출석을 두고 정치권 안팎이 시끄럽다. 한쪽에서는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된 대표성을 내세워 국회가 대법원장의 재판 및 대선개입 의혹을 해명해야 한다고 한다. 다른 한쪽은 대법원장 국감 소환은 사법부 독립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고 그 과정이 선출된 다수당 권력의 횡포라고 한다.
일단 대법원장이 국감에 불려나오고, 그걸 둘러싸고 정치사회 세력이 정쟁을 벌이는 상황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한숨을 내뱉게 한다. 그래서 친여든 친야든 공론장에 한마디라도 보탤 수 있는 이들 중 꽤 많은 사람들이 우려섞인 시선과 언술을 내고 있다.
하지만 대법원장이 국감장에 불려나와 정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의 상황 그 자체가 한국 정치와 사법부의 후진성이나 딱한 처지를 보여주고, 더 나아가서는 민주공화제의 원리가 훼손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장도 사안에 따라서는 국회에 나와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을 적극적으로 해명할 필요가 있다. 그런 시시비비의 과정을 견디고 이겨내야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키우고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다. 헌법도 실정법(국회법)도 대법원장을 국감에 부를 수 있게 해놓은 것은 그런 이유다.
지금의 상황이 바로 그런 때다. 이런 땐 대법원장은 형식상의 권위와 독립성을 실질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서 국민의 신뢰를 얻고자 노력해야 한다. 서부지법사태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바와 같이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취약해진 현실에서는 특히 그렇다. 사법부의 권위와 독립성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야 하는 것’임을 상기해야 한다.
사법부 독립성도 민주공화제 대의 충족해야
헌정체제는 선출된 권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법부에게 정치권력의 정당성 여부를 최종적으로 심판할 권한마저 부여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럴 자격을 지속적으로 입증해야 할 책무도 부과했기 때문이다. 사법부는 이를 늘 명심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오히려 지금의 상황은 긍정적 측면마저 갖고 있다. 독립성을 가질 자격, 즉 권위와 신뢰를 회복하거나 새롭게 얻을 계기이기도 한 것이다.
일단 자격 입증의 목적과 방법의 문제가 남아 있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치·사회세력에게 기대는 방법을 써서는 안된다. 또 선출권력의 대표성을 공격하는 식이어서도 안된다. 그리고 목적은 사법부 독립성 자체가 아니라, 민주공화제의 대의를 충족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 중에 핵심은 선거에서 패배했다는 의미에서가 아닌, 생존을 포함해 인간적 삶을 지탱할 힘도 언덕도 없다는 의미에서의 ‘약자의 주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민주공화제가 정당한 이유는 단지 권력집단 간의 견제와 균형에 앞서, 정치권 밖마저 포함해 사회 전체의 차원에서 강자와 약자 간의 견제와 균형을 지향하고 구현하는 질서이기 때문이다. 이를 간과한 채 선출된 권력의 위험성과 정치적 다수세력의 횡포에 대한 우려를 내세워 사법부 독립성을 그에 대립시키는 것으로 몰고하는 것은 허구다.
또 다른 허구도 있다. 사법부 독립성을 내세우는 것에 대해 선출권력의 ‘절대적 우위’를 주장하며 경쟁세력과 사법부에 대해 ‘무릎 꿇으라’라고 강변하는 식의 인식과 태도가 바로 그것이다. 선출된 권력의 정당성과 우위성 역시 사법부 독립성과 마찬가지로 다수자의 권한이 약자의 권한을 강화해 사회 전체에 걸쳐 견제와 균형의 질서를 구현하는 데서 나온다.
다수에 의해 선출됐다고 정당성 가지지 않아
민주공화제는 다수에 의해 선출되었다는 것 그 자체로 정당성과 권력을 얻고 유지할 수 있는 질서가 아니다. 다수결은 그 자체로는 의사결정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 다수결은 특히 주요 쟁점 사안에 대해 ‘53 대 47’ 식의 팽팽한 구도가 만들어지는 한국정치 지형에서는 뭔가 부족해도 한참이나 부족한 의사결정방식이기도 하다.
다수의 결정이라고 해도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그것이 강자를 견제하고 약자를 보호하는 결과를 낳아야만 한다. 적어도 그럴 목적임을 인정받아야 한다. 이를 포착하지 못하고 선출된 권력의 사법개혁 시도를 탓하거나, 선출된 권력의 제한을 요구하며 권위와 신뢰를 잃은 사법부의 독립성을 고집하는 것은 결국 당파성 시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 귀결은 양극화된 정치의 심화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