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열풍에 드리운 1929년 대공황 유령

2025-10-17 13:00:01 게재

'대마불사' 저자 앤드류 로스 소킨의 신간 ‘1929’

100년전 월가 붕괴 통해 오늘날 과열된 시장 경고

1929년 10월 미국 월스트리트가 무너졌다. 하루 사이에 수십억 달러의 자산이 증발했고 이는 곧 대공황으로 이어졌다. 뉴욕타임스 금융 칼럼니스트이자 2008년 금융위기를 다룬 책 ‘대마불사’(Too Big to Fail) 저자인 앤드류 로스 소킨은 신간 ‘1929’에서 이 참사를 다시 꺼내 들었다. 그는 100년 전인 1929년 상황을 복원해 세계적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는 현재의 인공지능(AI) 투자 열풍에 강력한 경고장을 내놓았다.

13일(현지시간) 미국 시사잡지 뉴요커와 14일 애틀랜틱이 이를 비중있게 다뤘다. 뉴요커는 이를 “1929년의 유령”에 비유했고, 애틀랜틱은 “AI 붐이 단지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부채와 과잉 신용 위에 세워진 취약한 피라미드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2025년 세계 금융시장은 매우 뜨겁고 그 중심엔 인공지능(AI)이 있다. 기술 혁신에 대한 기대감, 새로운 산업 생태계, 기회를 놓칠까 두려워하는 ‘포모(FOMO)’ 심리까지 맞물리며 연일 증시를 달군다. 엔비디아(NVIDIA) 주가는 1년 새 3배 넘게 뛰었고 시장은 매일 새로운 고점을 경신한다. 하지만 월가 안팎에서는 거품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뉴요커는 소킨의 저서를 통해 오늘날의 AI 중심 주가 상승과 1920년대의 라디오 열풍이 만들어낸 투기 심리를 비교했다. 1921년에서 1928년 사이 라디오코퍼레이션오브아메리카(Radio Corporation of America) 주가는 1.5달러에서 85.5달러까지 치솟았다. 오늘날 엔비디아 주가 흐름과 흡사하다. 1929년 당시 투기적 상승은 기존의 가치 평가 기준을 무너뜨렸고, ‘포모(FOMO)’ 심리가 시장을 지배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영란은행(Bank of England)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주식시장의 경기조정주가수익비율(CAPE)은 닷컴 버블 당시와 유사한 수준이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메모에서 현재의 빅테크 주가 상승이 “비이성적 투기보다는 실질 성장에 기반했다”고 평가하면서도 “이전 버블과 유사한 요소들”이 분명 존재한다고 인정했다.

소킨은 ‘1929’에서 당시 월가의 지도자들이 어떻게 위기를 키웠는지를 구체적으로 서술한다. 특히 내셔널 시티은행(현 씨티은행 전신) 회장 찰스 미첼은 시장 하락을 막기 위해 자사 주식을 무리하게 매입했고, 이로 인해 은행 전체가 위기에 빠졌다.

애틀랜틱은 ‘1929의 교훈’ 기사에서 미첼이 시장 폭락 당일 은행 자금을 동원해 주가 방어에 나섰고, 결국 자신의 사재까지 투입했다고 소개했다. 이는 곧 그를 파산과 의회 청문회의 중심으로 이끌었고, 1933년 글래스-스티걸법(Glass-Steagall Act) 제정의 계기가 됐다는 설명이다.

글래스-스티걸법은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분리를 법제화하며 금융 시스템의 안정을 도모했고, 이후 증권거래위원회(SEC) 설립으로 이어졌다. 금융자본주의 폭주를 억제하려는 관리자본주의 시대로의 전환이었다.

소킨은 이 과도기적 개혁이 한 세대 동안 미국의 안정적 성장과 소득 분배를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1999년 그램-리치-블라일리법(Gramm–Leach–Bliley Act)을 통해 글래스-스티걸의 핵심 조항이 폐지되면서 다시 규제 완화의 길로 돌아섰다. 지금 AI 투자 열풍은 이런 흐름의 최신 단계다.

‘1929’는 역사적 인물들의 사적 기록과 편지, 회고록, 청문회 자료 등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당시를 재현하며 마치 드라마처럼 전개된다. 제시 리버모어, 토머스 라몬트, 리처드 휘트니 등 실존 인물들이 주요 등장인물들이다.

휘트니는 증권거래소 회장에서 횡령범으로 전락하며 싱싱 교도소에 수감됐고, 알버트 위긴은 자신의 은행 주식을 공매도한 사실이 페코라 위원회(Pecora Commission)를 통해 드러나며 사임했다. 이들의 몰락은 단지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탐욕과 무책임이 낳은 구조적 붕괴의 상징이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퍼스트 브랜드(First Brands)라는 자동차 부품 회사가 최근 파산하며 수십억 달러의 담보가 사라졌고, 미국 법무부가 수사에 착수했다. 뉴요커는 이를 AI와 무관한 사건이지만 고레버리지(High Leverage)와 불투명한 사적 대출 구조가 금융 시스템에 미칠 수 있는 파급력의 경고로 해석했다.

소킨은 이러한 사건을 ‘전조’로 본다. 그는 “모든 위기는 드러나기 전까지 신뢰받던 기업들의 과도한 투기를 보여준다”는 19세기 영국 저널리스트 월터 배젓의 말을 빌려 현재 상황이 예외가 아님을 강조했다.

결국 소킨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단순하다. 그는 서문에서 “당시 금융 거물들이 특별히 더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다”고 썼다. 그들은 단지 시스템의 인센티브를 따랐고, 인센티브는 과열과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혁신은 늘 있었고 거품 역시 반복됐다.

결국 위기를 만드는 것은 기술도 시장도 아닌 인간의 탐욕과 낙관 그리고 망각이다. 1929년이 남긴 교훈은 과거의 기억이 아닌 현재와 미래에 대한 경고라는 의미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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