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금리차 역사적 저점…대형 운용사 비중 축소

2025-10-17 13:00:01 게재

스프레드 0.8%p 역대최저 수익률 4.8% 여전 매력적

몇년간 이어진 회사채 랠리가 정점에 다다르면서 글로벌 대형 투자자들이 고위험 채권 비중을 대폭 줄이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6일(현지시간) “몇 년간 상승세를 탄 신용시장이 세계 경기가 꺾이면 급격한 매도 압력에 직면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블랙록과 M&G, 피델리티 인터내셔널 같은 대형 자산운용사들은 최근 미국 회사채의 신용스프레드(국채 대비 추가 금리)가 급격히 좁아지면서 더 이상 위험을 떠안을 만한 보상이 충분치 않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안전성이 높은 우량 회사채나 국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중이다.

일각에서는 미중 무역 갈등 완화 기대와 연방준비제도(Fed·미국 중앙은행)의 추가 금리 인하 전망이 신용시장에 지나친 낙관론을 불러왔다고 우려한다. 피델리티 인터내셔널의 마이크 리델은 “신용스프레드가 지나치게 좁아져 더 줄어들 여지가 거의 없다”며 “세계 어디서든 예상치 못한 변수가 터지면 스프레드가 급격히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피델리티는 실제로 글로벌 플렉서블 채권펀드에서 선진국 크레딧에 대해 스프레드 확대에 베팅하는 숏 포지션을 보유하고 있다. 스프레드가 확대될때 발생하는 이익을 겨냥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미국과 유럽 투자등급 회사채의 국채 대비 추가 금리는 현재 약 0.8%포인트 수준이다. 2022년 1.5%포인트를 넘었던 것에 비하면 절반 가까이 줄었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점에 근접한 상태다.

블랙록 유럽 액티브 채권 공동대표 사이먼 블런델은 “스프레드가 끊임없이 좁아지면서 우리는 더 높은 등급에, 더 짧은 만기의 채권으로 옮겨갔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장이 금리 인하와 미국의 안정적 성장이라는 이른바 ‘골디락스 시나리오’를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며 “위험 대비 보상 측면에서 보면 신용시장에서 방어적으로 가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일부 구간에서는 스프레드가 마이너스로 역전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낙관론자들은 초긴축 스프레드가 최근 몇 년간 기업들의 재무구조가 튼튼해진 덕분이며, 내년 말까지 연준이 최소 4차례 0.25%포인트씩 금리를 내릴 것이란 기대가 뒷받침하고 있다고 본다. 다만 최근 미중 무역 갈등 재점화와 자동차 부품업체 퍼스트 브랜드 그룹의 부실 우려가 불거지면서 스프레드는 소폭 다시 벌어졌다.

콜럼비아 스레드니들의 폴 니븐은 “최근 몇 주 사이 크레딧(회사채) 비중을 중립으로 낮추고 하이일드 채권을 축소했다”며 “국채 대비 수익구조가 점점 불리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신용도가 낮은 기업에 제공하는 변동금리 담보대출인 레버리지론(leveraged loan) 시장에서는 투자자 반발 조짐도 감지된다. 특수화학업체 누리온의 58억달러 규모 대출과 제약사 말린크로트의 10억달러 이상 대출 딜이 최근 잇따라 보류됐다. 한 하이일드 채권 트레이더는 “최근 1~2주 사이 개별 기업 부실 사건이 여럿 터지면서 시장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고 전했다.

런던 크레딧 헤지펀드 레드헤지의 안드레아 세미나라는 “올해 스프레드가 기업 간 차별 없이 일제히 좁혀지면서 시장이 개별 기업의 고유 위험을 제대로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최근 국채 금리 상승 덕분에 회사채의 만기수익률 자체는 여전히 매력적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미국 투자등급 회사채의 만기수익률은 약 4.8% 수준이다. M&G 인베스트먼츠의 벤 로드는 “회사채 수익률이 매력적”이라면서도 “자금이 더 높은 등급 회사채와 커버드본드(covered bond·담보부 채권)로 이동 중”이라고 말했다.

결국 스프레드가 역사적 저점권에 머무는 가운데 시장은 당분간 개별 기업 부실 동향과 레버리지론 수급 변화를 예의주시하며 위험선호의 방향을 가늠할 전망이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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