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계 금융자산 비중 35%…미국의 절반 수준
상위 1%, 부동산 비중 80% … 미국은 13% 불과
연금 세제 혜택 등 자본시장으로 자금 유입 필요
우리나라 가계 자산에서 금융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35%로 미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국내 순자산 상위 1% 가계의 부동산 비중은 80%에 달하는 등 부동산 쏠림이 과도하다. 이는 생산성이 높은 산업으로 자금이 흘러가는 것을 막아 국가 경제의 성장 잠재력과 역동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가계별로는 부동산가격 상승 기대가 높아지는 시기 가계부채가 빠르게 늘어나고 금융 불균형이 확대되는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정부와 금융투자업계는 정책금융 금융회사 자본시장이 함께 자금을 생산적 부문으로 유도해 국민 자산 형성과 경제 선순환을 복원하는 거시적 금융 전환 전략으로 ‘생산적 금융’을 강조하고 있다. 가계 자산의 자본시장 유입을 위해서는 국내 기업 지배구조 개선, 주주환원 확대 등 한국증시 저평가 해소 작업 지속과 연금 세제 혜택 강화 등 다양한 인센티브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순자산 상위 그룹일수록 부동산 쏠림 ‘과다’ = 17일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경제규모 대비 우리나라 가계가 보유한 순자산은 5.25배로 주요국 평균 수준이다. 하지만 가계 자산 구성은 크게 다르다. 비금융자산은 65%로 상당히 높은 반면 금융자산은 35%에 불과하다. 금융자산 비중이 67%인 미국의 절반 수준이다. 일본은 63%, 캐나다 51%, 영국 49%, 이탈리아 46% 등 대부분의 선진국 가계는 금융자산 비중이 우리보다 높았다.
순자산 분포에 따라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미국과 차이는 더욱 뚜렷하다.
2024년 말 기준 우리나라 순자산 상위 1% 가계의 총자산에서 부동산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79.4%에 달했다. 2020년 77.3%에서 꾸준히 올라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순자산 1~10% 구간에서도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75.2%에 달했고 상위 10~50% 구간에서는 70.9%였다. 국내 가계의 상당수가 자산의 70% 이상을 주택으로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미국 상위 1% 가계의 경우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13.1%에 불과했다. 상위 1~10% 가계 역시 23.8% 수준이다. 미국 가계 자산의 절반은 대부분 주식, 채권, 펀드, 연금과 같이 자본시장에 투자하고 있다. 미국 가계의 잉여 자금이 자본시장으로 활발하게 유입되어 자본시장의 발달과 기업의 투자를 지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화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순자산 상위 그룹일수록 부동산 비중이 더 높아지는 데 반해, 미국의 경우 순자산이 많을수록 부동산 비중이 크게 낮아지는 경향을 보인다”며 “우리나라 가계의 부동산 중심 자산 형성 방식은 생산성이 높은 산업으로 가계의 잉여자금이 공급되는 것을 제약하고, 이는 경제 전반의 성장 잠재력과 역동성을 약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자산 증가는 가계부채 급증과 금융 불군형 확대 등의 문제도 수반한다. 일반적으로 주택에 대한 투자는 거래 단위가 매우 크기 때문에 레버리지 활용을 수반한다. 때문에 부동산가격 상승 기대가 높아지는 시기에 가계부채가 빠르게 늘어나고 금융불균형이 확대되는 문제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도 기준금리 인하의 제약 요인으로 부동산가격 상승 기대와 그에 따른 가계부채 증가를 언급하는 등 높은 가계부채는 통화정책 운용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반면 자본시장 상품의 경우, 가계가 자기자본만으로도 투자가 가능하다. 정 연구위원은 “자본시장을 통한 자산 형성을 장려하는 것은 지속적으로 국내 경제의 위험요인으로 지목되는 가계부채 문제를 완화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자본시장 자금조달이 혁신기업 성장에 도움 =최근 학계에서는 자본시장을 통한 자금조달 활성화가 혁신기업을 중심으로 민간부문의 성장세를 촉진하고 경제성장을 뒷받침한다는 연구 결과가 제시되고 있다. 유럽에서도 가계 자산을 자본시장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요청으로 유럽 경제의 성장과 경쟁력 회복을 위한 로드맵을 제시한 드라기 보고서는 유럽의 금융중개 효율성이 낮은 원인으로 자본시장의 분절성과 함께 저축의 낮은 자본시장 유입률을 지적한 바 있다. 보고서는 “유럽 가계가 대부분의 저축을 예금 등 안전자산으로 보유함에 따라 민간 저축이 생산적 투자로 연결되지 못했다며, 낮은 수익률의 안전자산 중심 자산구성으로 인해 유럽 가계의 저축이 미국 가계보다 더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시장 상품을 중심으로 자산을 보유한 미국 가계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순자산 증가가 더 적었다”고 평가했다.
◆자본시장 참여 유도 인센티브 필요 = 다만 우리나라 가계 자산이 자발적으로 자본시장으로 유입되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개인들이 부동산에 부채를 포함, 너무 많은 자산을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 연구위원은 다양한 인센티브 방안 가운데 연금 적립에 대한 세제 혜택을 강화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가계의 노후소득 준비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한국의 연금 소득대체율은 2023년 기준 31.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50.7%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자산이 온통 부동산에 묶여 있어 노후소득으로 활용할 수 있는 유동성 자산이 부족한 실정이다.
김갑래 자본시장 연구위원에 따르면 주요국들은 사적연금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세제혜택을 제공함으로써 그 기능을 강화하고 은퇴 이후 소득 마련을 유도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대표적인 퇴직연금 제도인 401(k)의 연간 납입 한도가 2025년 기준 7만달러에 달할 정도로 세제혜택 규모가 크다.
정 연구위원은 “이러한 세제 인센티브는 가계 자산이 연금 계좌를 통해 자본시장으로 유입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나아가 가계 자산이 실물경제로 유입되는 선순환을 창출하고, 장기적으로는 노후 빈곤 지원을 위한 국가 재정부담을 완화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