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대출 사고 또 터진다” 불안

2025-10-20 13:00:02 게재

다이먼의 “바퀴벌레” 경고 … 부실대출 여파에 지역은행 급락·자금시장 경색

월스트리트 간판이 뉴욕 증권 거래소(NYSE) 건물 밖에 걸려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금융시장이 다시 흔들리고 있다. 자동차 대출업체 트라이컬러와 부품사 퍼스트브랜즈의 파산에 이어 지역은행들이 부실 대출 소송에 휘말리자, 시장 곳곳에서 ‘다음은 어디냐’는 불안이 번지고 있다.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CEO가 “바퀴벌레 한 마리를 보면 더 있을 것”이라 경고한 말이 현실이 되는 듯, 월가는 다시 위기 공포를 떠올리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19일(현지시간) 투자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다음 부실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 기업의 부실이 드러나면서 미국 은행권 불안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솔트레이크시티의 자이언스뱅코프는 6000만달러, 피닉스의 웨스턴얼라이언스는 1억달러에 달하는 부실 대출을 회수하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다.

두 은행이 사기 의혹이 제기된 투자펀드 칸토르 그룹과의 거래를 공개하자 KBW 지역은행지수가 6.3% 급락했다. 두 은행 주가도 각각 13%, 11% 떨어졌다.

시장 불안은 대형은행으로 확산됐다. 제프리스 파이낸셜그룹은 퍼스트브랜즈와 얽힌 대출 노출이 확인되며 주가가 하루 만에 10% 넘게 하락했다. 다이먼 CEO는 “소수의 사건일 수 있지만, 이런 부실이 몇 번 반복되면 금융 사이클로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 16일 보도에 따르면 글로벌 증시도 동반 하락했다. 미국 지역은행 불안 여파로 S&P500 선물지수가 1.1% 떨어졌고, 유럽의 스톡스600 은행지수는 1.7% 내렸다. 시장의 ‘공포지수’로 불리는 VIX지수는 장중 28.99까지 상승하며 5개월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BNY멜론의 제프리 유 수석전략가는 “시장 전반에 방어적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며 “은행이나 신용 부문의 작은 균열에도 과민하게 반응할 정도로 불안이 쌓였다”고 말했다.

부실 대출의 근원지는 사모신용과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 시장으로 확산되고 있다. FT는 퍼스트브랜즈의 붕괴가 “부실 대출이 쌓여 있음을 보여주는 전조”라고 평가했다.

퍼스트브랜즈는 50억달러 이상 대출을 받았고, 제프리스는 이 대출채권을 쪼개서 CLO를 발행했다. 이를 편입한 80여개 CLO가 약 40억달러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됐다.

CLO는 기업 대출을 묶어 만든 구조화 채권으로, 선순위(senior)·후순위(junior)·주식형(equity) 세 단계로 나뉜다. 손실이 발생하면 주식형이 먼저, 후순위가 그다음으로 충격을 받는다.

지역은행들은 보통 상대적으로 안전한 선순위 트랜치를 매입하지만, 시장 전반의 부실이 확산되면 이들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CLO는 자본 대비 10배가량의 레버리지를 일으켜 운용되며, 일정 수준의 손실만으로도 신용등급 하락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모건스탠리 분석에 따르면 PGIM, 블랙스톤, 오크트리 등 주요 자산운용사들도 해당 CLO에 일부 노출돼 있다. 마블게이트자산운용의 앤드루 밀그램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신용시장 내부에서는 이미 상당한 문제들이 잠재돼 있고, 경제 전반에 위험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자금시장 경색 조짐도 거세다. 단기자금 금리(SOFR)는 연준의 기준금리(연방기금금리·IORB) 대비 0.25%포인트 높게 형성돼 최근 6년 만에 최대 격차를 보였다.

은행 간 거래가 얼어붙자, 연준 상설레포기구(SRF)에서의 차입 규모가 이틀 동안 150억달러를 넘어서며 팬데믹 초기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한편 미국 은행들이 보유한 장기채권의 미실현 손실은 약 3950억달러에 달한다. 금리 인상기에 유동성이 급감해 채권을 급히 매도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이 손실이 현실화돼 은행 자본에 손상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연준이 단기 유동성 압박을 완화할 추가 조치를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023년 실리콘밸리은행(SVB)과 퍼스트리퍼블릭은행 붕괴 당시처럼 유동성 위기가 순식간에 확산될 수 있다는 경계심이 생겨난 것이다.

지난해 종료된 은행 유동성 지원 프로그램(BTFP) 이후 뚜렷한 완충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이 대응에 나서지 않는다면, 신용 경색이 실물경제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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