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관 쓴 신라장수 1600년 만에 환생

2025-10-20 13:00:02 게재

황남동서 금동관 갑옷 투구 일체 출토

경북 경주 황남동 대릉원 일원에서 1600년 전 신라 장수의 무덤이 모습을 드러냈다. 국가유산청과 경주시는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경주 황남동 120호분 하부에서 ‘1호 목곽묘(덧널무덤)’를 새롭게 발굴했다고 20일 밝혔다. 이번 발굴은 신라 적석목곽분(돌무지덧널무덤)으로 발전하기 직전의 과도기적 무덤 구조를 보여주는 중요한 성과다.

국가유산청과 경북 경주시는 경주 황남동 120호 무덤 일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4~5세기경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을 새롭게 확인했다고 20일 밝혔다. 무덤 주인이 있던 공간 위쪽에서 ‘△’ 또는 ‘凸’ 문양을 투조(透彫·소재의 면을 도려내어 문양을 나타내는 금속공예 기법)한 조각 여러 점이 나왔다. 사진은 황남동 출토 금동관 추정 일부 조각(왼쪽)과 금관총 금제 모관. 연합뉴스

1호 목곽묘에서는 사람과 말의 갑옷과 투구 일체, 신라에서 가장 오래된 금동관 일부, 그리고 칼을 찬 남성 장수의 인골이 함께 출토됐다. 목곽묘는 주곽과 부곽으로 구성되는데 부곽에서는 장수를 보좌하던 순장된 시종으로 추정되는 인골도 발견됐다. 주인공은 금동관을 쓴 채 대도를 차고 있었으며, 치아 분석 결과 30세 전후 남성으로 추정된다.

출토된 갑옷은 철제와 유기질(가죽)을 함께 사용한 혼용 찰갑(비늘갑옷) 형태로, 활동성을 높이기 위해 가벼운 재질을 사용한 고위 장수의 전신 갑옷이다. 말투구 등 말갑옷 일체도 양호하게 남아 있어, 쪽샘 C10호 목곽묘에 이어 신라 중장기병의 실체를 보여주는 2번째 사례로 평가된다.

1호 목곽묘는 동서 방향으로 주곽과 부곽이 일렬로 놓인 반지상식 구조로, 묘곽 주위에 돌을 채운 점 등에서 목곽묘와 적석목곽분의 중간 단계적 특징을 갖는다. 연구진은 “신라 고분이 어떻게 대형 돌무지덧널무덤으로 발전했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 단서”라고 평가했다.

이번 발굴로 확인된 금동관은 고구려 집안 지역 출토 금동장식과 유사하다. 경주 지역에서 확인된 금동관 가운데 가장 오래된 사례로 4세기 말~5세기 초 신라 황금문화의 금속공예 기술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다.

국가유산청은 “이번에 확인된 주인공은 금동관과 완전한 무장세트를 갖춘 당대 최고위 신라 장수로 군사적 지위뿐 아니라 정치적 역할을 겸한 인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한편 황남동 1호 목곽묘 발굴 현장은 에이펙(APEC) 기간을 포함해 27일부터 11월 1일까지 일반에 공개된다. 같은 기간 주요 유물은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신라월성연구센터(숭문대)에서 전시된다.

국가유산청과 경주시는 이번 공개와 함께 20일부터 11월 1일까지 첨성대에서 야간 외벽 영상(미디어 퍼사드) ‘별의 시간’과 ‘황금의 나라’를 상영하고, 구황동 원지 일원을 ‘빛의 정원’으로 꾸민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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