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광산업 호황 속 미국만 역주행
셧다운과 외교 갈등 영향
트럼프 리스크가 만든 침체
전 세계 관광 산업이 회복을 넘어 급성장하고 있지만 유독 미국만 역주행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유럽의 로마, 바르셀로나, 베네치아 등은 관광객 급증으로 도시 기능이 마비될 정도다.
지난 10월 초 로마에서 열린 세계여행관광협의회(WTTC) 글로벌 서밋은 이 같은 호황을 대변하는 자리였다. 이탈리아 총리 조르자 멜로니는 “관광은 국가 전략의 중심”이라며 역설했고, WTTC 회장 글로리아 게바라는 “세계 관광은 전례 없는 성장을 경험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런 흐름에서 미국만 뚜렷한 예외로 남아 있다. 20일(현지시간) 보스턴글로브 보도에 따르면 2025년 미국의 국제 관광객 지출은 약 120억달러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주요 선진국 중 유일한 마이너스 성장이다.
WTTC는 미국의 관광 지출이 7% 감소할 것이라고 발표했고, 미국 상무부 산하 국가여행관광국 통계도 이를 뒷받침한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이후 외국인 방문객 수는 매달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정치적 불안정성과 정부 셧다운은 미국의 관광 매력을 급격히 떨어뜨렸다. 워싱턴 D.C. 관광청은 “D.C.는 열려 있습니다”라는 캠페인을 시작했으나, 캠페인 직후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이 셧다운으로 문을 닫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TSA(미국교통안전청) 대기 시간 증가와 항공기 지연, 관제탑 일시 폐쇄 등도 관광객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제프 프리먼 미국여행협회 회장은 “이번 셧다운은 여행산업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캐나다는 미국 관광 산업에 최대 피해를 안겨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언급하고 높은 관세로 위협하자 캐나다인들의 반감이 커졌다. 지난 7월 캐나다발 관광객 수는 전년 대비 31% 급감했다.
캐나다 항공사들은 미국 여행지를 광고하지 않고, 주요 일간지는 미국 여행 관련 기사를 아예 싣지 않는다. 매사추세츠 관광청과 Meet Boston 관계자들은 “캐나다와의 역사적 유대가 정치적 갈등으로 흔들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관광객이 줄면서 지역 식당, 상점, 비즈니스 여행 수요도 함께 감소하고 있다. 에어비앤비, VRBO(숙소 단기임대 온라인 플랫폼)를 통한 단기 임대 시장 역시 여름 동안 큰 타격을 입었다. 캐나다발 임대 수요는 44.3% 감소했고, 독일(−12.4%), 뉴질랜드(−13.1%), 싱가포르(−11.1%)도 눈에 띄는 하락세를 보였다.
유럽의 최근 분위기와는 완전한 대조를 이룬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는 관광부를 설치하고, 관광객 분산과 지속가능성 연구에 예산을 집중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Brand USA 예산을 8000만달러 삭감하며 인력 감축까지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광 감소는 민족주의 때문일 수도 있지만 별일 아니다”라며 애써 상황을 축소했다.
다만 미국에서도 일부 지역은 예외다. 캘리포니아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 대상이 된 블루스테이트임에도 관광 수요에서 선방하고 있다. Visit California의 캐롤라인 베테타 CEO는 “사람들이 ‘미국엔 안 가지만 캘리포니아엔 간다’는 논리를 점점 더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관광산업 회복에 대한 기대는 2026년에 집중되고 있다. 미국은 FIFA 월드컵 개최국으로 선정돼 보스턴, LA 등 여러 도시에서 경기를 유치할 예정이다. 또한 독립 250주년 행사인 America250도 예정돼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정치적 리스크를 안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보스턴에서 월드컵 경기를 빼앗을 수 있다”고 발언했고, America250을 개인 중심의 홍보 수단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토론토에 사는 애덤 골드 교수는 보스턴글로브에 “미국을 방문하지 않는 이유는 몇 가지 있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대통령”이라며 지금 미국 관광이 직면한 현실을 압축적으로 전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