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평
중국 경제의 역설 - 안정의 기회비용과 혼란의 잠재효과
2000년 중국역사에서 정치적으로 안정된 시기에는 성장이 둔화하고, 반대로 혼란과 변혁의 시기에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했던 역설적 사례들은 오늘날 중국이 직면한 구조적 경제침체를 풀어갈 역사적 통찰을 제공한다.
혼란이 오히려 성장을 촉진한 대표적 사례는 송나라다. 역사상 가장 취약했던 왕조 중 하나인 송은 북방의 요(遼) 금(金) 원(元)의 압박 속에 영토의 절반까지 내주며 정권을 유지했지만 군사적 약세와 정치적 불안정 속에서도 유례없는 경제번영을 구가했다.
당시 송나라는 GDP가 세계 전체의 절반에 이를 정도로 융성했으며 1인당 GDP 또한 영국 등 서구를 능가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경제부흥은 역설적으로 봉건 중앙 체제의 통제가 약화되면서 표출된 상업의 발달과 기술의 혁신, 경제의 개방 덕분이었다. 무거운 금속화폐 대신 세계 최초의 지폐인 ‘교자(交子)’가 민간에서 탄생했고, 제철업과 도자기 산업, 활판인쇄술이 꽃피웠으며, 활발한 해상무역은 항구도시들을 국제적 상업 중심지로 만들었다.
근대의 혼란기인 중화민국 시기(1912-1949)에도 유사한 패턴이 나타났다. 군벌 할거, 국공내전, 일본의 침략 등 극도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1912년부터 1937년까지 연안 지역의 공업은 연평균 8~9%의 놀라운 속도로 성장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서구 열강의 영향력이 약화된 틈을 타 중국의 민족자본이 성장했고, 상하이와 톈진을 중심으로 근대 산업의 기틀이 다져졌다. 이 시기의 혼란 속에 구축된 제조업 기반과 양성된 산업인력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국가 경제를 운영하는 중요한 유산이 되었다.
혼란기 낡은 관습·제도의 해체가 혁신 만들어
1970년대 말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또한 문화대혁명의 이념적 혼란과 경제적 파탄을 겪은 직후였기에 가능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한계를 절감한 당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실용주의가 힘을 얻었다.
개혁개방을 실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물가상승과 불평등의 심화가 1989년 톈안먼 사태라는 정치적 격변으로 이어졌으나, 덩샤오핑은 1992년 남순강화를 통해 개혁의 동력을 되살리며 고도성장을 이끌었다. 국가가 독점하는 계획경제의 틀을 깨고 민간의 역할을 ‘묵인’ ‘방조’를 넘어 ‘장려’하는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경제기적의 원동력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례들과 비교할 때, 2012년 출범한 시진핑 시대는 ‘안정으로의 회귀’가 두드러진다. 공산당 영도의 강화와 강력한 중앙집권을 통해 마오쩌둥 시대에 비견될 만큼 정치적 안정을 구축했다. 이러한 정치적 안정에는 비싼 기회비용이 뒤따랐다. 2010년 10.6%에 달했던 경제성장률은 시진핑 집권 후 7%대로 낮아졌고 최근에는 5%대 성장률 방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의 중장기 성장률이 3%대로 떨어질 것을 경고하고 있다.
이처럼 정치적 안정이 경제적 비용을 초래하고 반대로 정치적 혼란이 경제발전의 기회를 잉태하는 역설이 나타나는 배경은 무엇보다 혼란기에는 기존의 낡은 제도와 관습의 속박이 약화되면서 새로운 시도와 혁신이 움틀 공간이 열리기 때문이다.
송나라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 과거 문벌귀족 체제를 벗어나 실용을 중시하는 사대부 관료가 경제를 이끌었다. 중화민국 시기는 전제왕정이 무너진 체제 전환기였기에 다양한 경제 실험이 가능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역시 문화대혁명의 상처 위에서 ‘생존’을 위해 혁신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절박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시들어버린 민간 활력 되살리려는 노력 필요
정치적 안정 시기에는 기존 질서에 안주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의 도입을 주저해 혁신의 동력이 약해진다. 청나라의 황금기인 강희 옹정 건륭제의 ‘강건성세’도 기존 농업경제의 틀에 안주하였기에 민생이 팍팍해지는 ‘안정 속의 빈곤’이 나타났다.
시진핑정부도 정치적 안정 속에 ‘중국제조 2025’나 ‘신질 생산력’ 같은 국가 주도 기술혁신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경제 전반으로 온기가 퍼지지 않는 ‘발전 속의 침체’가 뚜렷하다. 국가부분으로의 자원 집중으로 인해 경제혁신의 주력군이자 고용 창출의 주역인 민간부문이 위축되었기 때문이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그 운율은 반복된다”는 말이 있다. 진정한 강국은 혼란을 두려워하지 않고 변화를 통해 새로운 활력을 찾아내는 국가다. 중국이 2049년 ‘두 번째 100년’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정치적 안정의 대가로 시들어버린 민간의 활력과 경제의 역동성을 되살리는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