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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출권력의 산술주권과 사법부의 역사주권

2025-10-23 13:00:01 게재

최근 대법원장의 국회 증언을 두고 표출된 선출권력과 사법부의 상호관계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 대통령을 당선시키고 의회에서 다수당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은 선출권력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한편, 대선에서 패하고 의회 소수당인 국민의힘은 삼권분립의 원칙을 앞세운다. 논의는 더 나아가 입법부와 행정부가 주도하는 사법부 개혁으로 발전하는 양상이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민주주의 정의는 단순한 만큼 강력한 힘을 지니는 함축적인 표어다. 이 정신을 반영하듯 우리 헌법 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못을 박았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나 국회가 관료적으로 임명된 사법부보다 더 강한 정통성과 권력을 누리는 일은 당연해 보인다. 특히 대법원의 경우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 절차를 진행한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선출권력인 행정부 수장이나 입법부의 우월적 위상이 돋보일 수 있다.

선출된 권력의 사법부 공격은 정당한가

하지만 이런 시각은 민주주권의 역사와 이론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비롯된다. 전통적으로 민주주권에는 두 개의 기둥이 존재한다. 하나는 선거를 통해 국민의 대표를 뽑는 ‘산술적 주권’이다. 민주주의 이론에 따르면 국민의 의지는 하나여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통일된 의지는 존재하지 않으며 공동의 합의를 만들기도 매우 어렵다. 따라서 유럽과 미국 등 민주주의를 시작한 나라들은 선거와 다수제라는 불완전하지만 요긴한 기술적 장치를 개발했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선거를 통한 대의제란 민주주의의 당연한 귀결이라기보다 서서히 형성된 제도적 합의일 뿐이다. 이론적으로 당선자를 지지하는 다수가 마치 국민 100%인 것처럼 정통성을 인정한다는 합의이고, 선거일의 국민 의사가 임기 동안은 똑같다는 가정이다.

다른 하나는 국민의 공동가치를 법으로 만들어 쌓아온 ‘역사적 주권’이다. 여기서 법 체계란 ‘공동체 가치의 장기적 기억’이라고 할 수 있고 사법부는 사회계약의 수호자 역할을 한다. 법관들은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단함으로써 민주적 정통성의 장기 기억으로 기능한다.

선출권력과는 달리 법관이 되기 위해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장기교육과 과정은 공동체의 역사기억을 인식하고 양심에 새기는 절차다. 미국의 ‘모두를 위한 자유와 정의’나 프랑스의 ‘자유 평등 박애’, 대한민국의 ‘민주 공화국’은 공동체 가치의 상징이다. 법치국가란 민주공동체의 가치인 법이 선출된 권력에도 적용된다는 의미다.

선출된 자들이 완벽하게 민의를 대표하지 못하듯, 판사들도 완벽하게 국민의 공동가치를 반영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다수의 산술적 주권과 공동체 가치의 기억으로서 역사적 주권이라는 장치는 둘 다 불완전하더라도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상호보완적인 필수제도임이 틀림없다. 선출된 권력이나 공동체 역사를 대변하는 사법부의 우위를 따지는 일은 무의미하다.

사법부는 선출되지 않았지만 바로 그 이유로 더욱 확고하게 장기적 공동체의 가치, 즉 민주주의를 지키는 보루가 될 수 있다. 민주주의를 무너뜨린 역사적 사례는 언제나 선출된 권력에서 시작되었다. 과거 독일의 나치부터 최근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나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그리고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까지 독재의 길로 성큼성큼 나아간 측은 선거에서 당선된 다수 세력이다. 선출된 권력을 운운하며 사법부를 공격하는 행태가 매우 위험한 이유다.

민주당 행태가 눈살 찌푸리게 하는 이유

선출된 권력이 독재로 전진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사법부였다. 독재 성향이 있는 포퓰리즘 세력들이 집권하면 가장 먼저 공격하는 대상이 사법부의 독립성인 이유다. 현재 한국에서 진행되는 다툼은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정치적 힘겨루기를 넘어 민주주권의 원칙을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는 포퓰리즘적 도전이다. 사법부가 소중하고 필수적인 이유는 선출되지 않았기에 단기적 여론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장기적 국민주권을 수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행태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정치경쟁의 당사자가 심판을 겁박하고 갈아치우겠다고 나서는 태도 때문이며, 심지어 심판의 수를 늘리거나 게임의 규칙을 바꾸겠다고 앞장서기 때문이다. 선출권력은 강하지만 일시적이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 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