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점으로 돌아간 우크라 휴전 논의
트럼프-푸틴 정상회담 전격 취소 … 미·EU, 대러 추가 제재로 압박 강화
그는 “우리가 원하는 지점에 도달하지 못할 것으로 보였다”며 “회담을 강행하더라도 실질적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래에는 다시 회동할 것”이라는 가능성도 열어두었다.
이 같은 결정은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푸틴 대통령과 통화한 뒤 헝가리에서 미러 정상회담을 2주 내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지 불과 며칠 만에 나온 변화다. 정상 간의 사전 실무 협의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조건을 둘러싼 입장 차가 확인되며 회담 무산의 분위기가 감지됐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도네츠크와 루한스크를 포함한 돈바스 전역을 포기해야 한다는 기존 요구를 고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는 21일 밤에도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에 미사일과 드론을 동원한 공격을 감행해 민간인 6명이 사망했다.
회담 취소와 동시에 미국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 수위를 크게 높였다.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러시아가 평화 협상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지 않다”며 러시아 에너지 산업을 겨냥한 추가 제재를 단행했다. 이번 제재 대상은 ‘로스네프트 오일 컴퍼니’, ‘루코일’ 등 대형 석유기업 2곳과 그 자회사들이다. 이들 기업의 미국 내 자산은 모두 동결되며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50% 이상 지분을 보유한 모든 법인도 제재 대상에 포함된다.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은 “이제는 살상을 멈추고 즉각 휴전에 나서야 할 때”라며 “우리의 동맹국들도 함께 제재에 동참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같은 날 유럽연합(EU)도 러시아에 대한 19차 제재 패키지에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가장 눈에 띄는 조치는 러시아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을 2027년 1월 1일부터 전면 금지하는 것이다. 기존 계획보다 1년 앞당긴 조치로 단기 계약은 6개월 내 종료되고 장기 계약은 2025년 말까지 모두 파기해야 한다.
EU는 또 러시아 원유 밀수에 사용되는 이른바 ‘그림자 선단’ 소속 유조선 117척을 제재 명단에 추가해 누적 제재 대상 선박은 558척에 이르게 됐다. 이외에도 러시아 외교관에 대한 새로운 여행 제한 조치도 포함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취소를 알리는 자리에서 한국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맞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미중 정상회담은 예정대로 진행된다고 밝혔다. 그는 “상당히 긴 회담이 계획돼 있다”면서 미중 양국 간 현안을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며 기대를 나타냈다.
다만 앞서 베센트 장관이 언론 인터뷰에서 언급한 ‘약식 회담(pull-aside)’과는 뉘앙스의 차이가 있어 실제 회담의 규모와 의제에 관심이 쏠린다.
한편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유럽 정상들은 공동 성명을 통해 “푸틴 대통령이 진정으로 평화에 나설 준비가 될 때까지 러시아에 대한 경제·방산 압박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국제사회의 지속적 제재를 촉구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