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중국 소프트웨어 수출 금지 검토
MS·보잉·테슬라 타격 예상
협상 카드? 회의론 확산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의 희토류 수출 제한에 맞서 강력한 보복 카드를 검토하고 있다. 노트북부터 제트 엔진까지, 미국 소프트웨어가 들어간 모든 대중 수출품을 규제하겠다는 것이다.
로이터는 22일(현지시각) 관련 보고를 받은 익명의 백악관 고위 관리 3명의 말을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이 계획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달 초 예고한 ‘핵심 소프트웨어’ 수출 금지를 실행에 옮기는 방안이다. 미국 소프트웨어가 포함되거나, 미국 소프트웨어로 만들어진 제품의 중국 수출을 전 세계적으로 제한하는 게 골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중국산 제품에 100%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11월 1일까지 “모든 핵심 소프트웨어”에 대한 새로운 수출 통제를 시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소식통들은 이번에 처음 공개된 이 조치가 실제로 시행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런 통제 방안이 검토된다는 사실 자체가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의지를 보여준다. 소식통 2명에 따르면 미국 정부 내 일부에서는 보다 온건한 접근을 선호하고 있다고 전했다.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은 22일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모든 것이 테이블 위에 있다”며 “수출 통제가 소프트웨어든, 엔진이든, 다른 품목이든 시행된다면 주요 7개국(G7) 동맹국과 공조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전직 미국 무역 관료인 에밀리 킬크리즈 신미국안보센터(CNAS) 연구원은 소프트웨어가 미국의 자연스러운 협상 지렛대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이런 통제는 실행이 매우 어렵고 미국 산업에 역풍을 일으킬 것”이라며 “실제로 실행하고 고수할 수 있는 위협만 내놓기를 바란다”고 경고했다.
로이터 보도 직후 미국 증시는 일시적으로 흔들렸다. S&P 500 지수와 나스닥 지수가 하락했다가 장 막판 낙폭을 줄였다.
미국 증시 분석 매체는 마이크로소프트(MSFT +0.56%)부터 보잉(BA -0.31%), 테슬라(TSLA -0.82%)까지 중국 시장과 기술 제품 수출에 크게 의존하는 대형 미국 기업들이 이런 소프트웨어 수출 통제 조치로 인해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양국이 최악의 무역 전쟁으로 치닫는 가운데, 미국은 소프트웨어라는 강력한 카드를 꺼내 들었다. 글로벌 경제 혼란을 감수하고서라도 중국을 압박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셈이다.
중국 대사관 대변인은 미국이 검토중인 구체적인 조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일방적인 역외 적용 조치”에 반대하며, 미국이 잘못된 길로 나아갈 경우 “정당한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백악관 소식통 한 명은 행정부가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이 조치를 발표할 수는 있지만, 실제 시행은 미룰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다른 소식통 2명은 더 좁은 범위의 정책안들도 함께 논의 중이라고 했다.
로이터는 구체적인 제한 조치나 발표 시점에 대해서는 보도하지 않았다. 다만 미국은 최근 몇 년간 러시아에 대해 전사적자원관리(ERP), 고객관계관리(CRM), 컴퓨터 지원 설계(CAD) 등 기업용 소프트웨어 수출을 통제한 바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대응 카드로 꺼낸 “핵심 소프트웨어” 통제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고 로이터는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 이후 중국산 제품에 잇따라 관세를 부과해왔지만, 대중 수출 규제에 대해서는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AI 칩이다. 그는 엔비디아와 AMD의 AI 칩 수출에 강력한 규제를 부과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풀어줬다.
지난 5월 말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미국 자동차 업계가 필요로 하는 희토류 선적이 중국에 막히자, 트럼프 대통령은 칩 설계 소프트웨어 등에 새로운 수출 제한을 걸었다. 그러나 한 달여 만인 7월 초 이 조치를 다시 철회했다. 이처럼 일관성 없는 행보가 반복되면서 이번 소프트웨어 통제 역시 실제로 시행될지, 아니면 협상용 엄포에 그칠지 주목된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