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논란에도 지금 AI투자를 얘기하는 이유
데이터센터 수익성이나 정책적 리스크 상존 … AI가 끌어올릴 생산성에 베팅
인공지능(AI) 열풍은 고평가 논란과 함께 달린다. 대형 기술주의 밸류에이션(주가 대비 이익)은 역사적 고점이고, 데이터센터-전력-네트워크-냉각으로 이어지는 설비투자(CapEx)는 과거의 철도나 통신망을 연상시킬 만큼 가팔라졌다. 여기에 벤더 파이낸싱(판매자가 구매자에게 자금을 지원해 주는 것)과 GPU의 짧은 생애주기(1~3년), 전력단가 같은 변수가 수익성의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도 거세다.
그럼에도 주가는 크게 무너지지 않았다. 기업들이 투자를 미루면 뒤쳐질 경우의 손실이 현재 지출하는 비용보다 더 크다고 판단하고, 시장도 이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데이터센터 수익성
최근 논쟁의 중심에는 데이터센터 수익률이 있다. 일부 리포트는 “AI 워크로드용 임대·호스팅의 마진이 기대에 못 미친다”고 비판한다. 특히 특정 사업자의 대규모 증설 계획에도 마진 회수 속도가 더디다는 평가가 늘면서 주가가 약세를 보이는 장면이 반복됐다.
본질은 세 가지다. 첫째, 전력 문제다. 장기 전력계약과 송전망 증설이 지연되면 총소유비용(TCO)이 상승한다. 둘째, 활용률(가동률)이다. 모델·작업 스케줄링과 멀티테넌시가 정교할수록 같은 자산에서 처리량이 늘고 추론 단가가 떨어진다. 셋째, 감가상각이다. GPU 세대교체가 빠르면 투자 회수 전에 자산이 구형화될 수 있다. 이 세 축의 조합이 기업별로 다르게 작동하며 마진 격차를 키운다. 결국 “낮다/높다”의 이분법이 아니라 운영 역량과 조달 조건에 따라 성패가 갈리는 국면이다.
벤더 파이낸싱: 닷컴버블 떠올리게 해
반도체—모델 연구소—클라우드 사업자 사이의 선구매 약정·장기 공급계약 신용공여가 얽히는 벤더 파이낸싱은 닷컴버블의 재현을 떠올리게 한다. 제임스 앤더슨은 이러한 관행을 두고 “1999년의 메아리”라고 경고했다. 겉보기 수요는 공고해 보이지만 현금흐름 상호의존이 커져 자금시장 경색 시 충격의 연쇄 전이 위험이 크다. 긍정적 촉매라기보다 상시 관리해야 할 신용 리스크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정책 리스크: 인재·관세·순환 의존
미국의 H-1B 비자 등 이민정책 변화는 고급 인력의 이동을 어렵게 해 모델 고도화·배포 속도를 늦출 수 있다. 관세는 반도체 장비·부품, 전력·냉각장치의 조달 단가를 끌어올려 구축비와 추론 비용의 하락 속도를 둔화시킨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순환 의존 구조까지 겹치면 작은 수요 변화가 큰 실적 변동으로 증폭될 소지가 있다.
생산성 체화될 시간이 온다
미국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는 “AI 사이클은 야구로 치면 아직 3회 초”라고 말했다. 시행착오와 비용 부담이 있더라도 생산성의 체화가 본격화될 시간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은 다음 국면을 피지컬 AI로 규정한다. 자율주행과 로보틱스, 스마트팩토리·물류, 의료 영상과 신약 탐색, 위성·항공우주, 에너지 관리 등 실물 세계의 업무로 AI가 깊숙이 들어가면서 텍스트 중심 자동화를 넘어 현장 공정이 재설계되는 단계가 온다는 의미다.
앞서 리스크를 짚었다면 이제 왜 ‘지금 투자’ 논리가 성립하는지를 생산성의 경로에서 확인할 차례다.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재니 민턴 베도스도 “미국 경제에 맞서는 베팅은 스스로의 위험”이라며 이민·관세의 잡음에도 상황이 생각만큼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 낙관의 근거는 AI가 끌어올릴 생산성이다. 단기(0~2년)—현장 효율이 먼저 숫자로 드러난다. 코딩·고객응대·영업운영 등 텍스트 업무에서 사이클타임·오류율이 낮아지고 출시 주기가 단축된다. 동시에 추론 단가 하락으로 같은 비용에 더 많은 실험과 고객 접점이 가능해 영업·마케팅 효율이 오름세를 탄다.
중기(3~7년)—기업 내부의 개선이 거시로 확산된다. 데이터 거버넌스·보안, 전력 인프라·송전망, 업무 표준화·재설계, 인력 재교육 같은 보완재가 갖춰지면 AI는 업무 흐름 자체를 바꾸고 총요소생산성(TFP)에 기여한다. 관찰 포인트는 성능/달러·에너지/토큰의 하향 추세와 도입 확산률이다.
투자 포인트: 생산성 확대로 이익 창출
AI 도입이 높이는 생산성은 결국 기업 이익의 확장으로 연결된다. 첫째, 비용 절감이다. 자동화로 인건비·외주비가 줄고, 처리 속도·정확도가 개선되면서 제조·운영비와 판관비 부담이 낮아진다. 둘째, 매출력 제고다. 개인화 추천과 맞춤형 서비스 확대로 전환율이 높아지고 이탈률이 낮아진다. 출시 주기가 단축되면 신제품 기여가 커지며, 품질개선은 가격 유지 또는 점진적 인상을 가능하게 해 총이익률을 끌어올린다.
셋째, 자본효율 개선이다. 수요예측·시뮬레이션 정밀도가 높아져 설비가동률이 올라가고, 불필요한 전력·장비사용이 줄어 현금창출력이 강화된다. 재고·매출채권 회전이 개선되며 잉여현금흐름의 가시성이 커진다. 검증지표는 명확하다. 총이익률 상승, 판관비 비중 하락, 재고·매출채권 회전 개선, 잉여현금흐름 확대가 동시에 관찰될 때 고평가 논란은 힘을 잃고 멀티플 재평가 가능성이 열린다.
전력·인프라 병목과 국내 시사점
AI 확산의 속도는 결국 전력과 인프라에서 판가름 난다. 장기 전력계약(PPA)과 송전망 증설, 변전·냉각 설비의 납기 단축 없이는 데이터센터의 가동률과 마진이 제약된다. 글로벌 기업들은 전력효율(PUE) 개선과 액침·수랭 전환으로 단위 전력당 처리량을 끌어올리고 있으며, 탄소배출 요건을 충족하는 지역부터 증설이 집중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한국 입장에서는 고압 케이블·변전설비·열 교환·모듈형 냉각 등 공급망 경쟁력이 직접 기회로 이어진다. 통신 3사의 네트워크 투자는 AI 트래픽 증가와 동행하며, 전력요금 안정성·입지 규제 명확화가 결합될 때 국내 하이퍼스케일 투자의 속도와 TCO 하락이 동시에 가능하다.
한국 투자자를 위한 실행: 종목과 ETF
플랫폼 대형주는 AI 인프라 투자 흡수력이 크다. 마이크로소프트(MSFT), 알파벳(GOOGL), 아마존(AMZN), 메타(META)는 클라우드·광고·소프트웨어에서 가격결정력을 보유한다.
반도체·가속기 생태계는 병목 자산이다. 엔비디아(NVDA)는 가속기·소프트웨어 스택을 선도하고, 브로드컴(AVGO)·AMD(AMD)는 네트워킹·가속기 대안에서 존재감을 키운다. 메모리에서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HBM 증설의 직접 수혜다. 파운드리·첨단 패키징은 TSMC가 유력하다. 네트워킹·전력·냉각은 데이터센터 증설의 필수 모듈이다. 아리스타 네트웍스(ANET), 버티브(VRT)가 대표적이다. 전자설계자동화(EDA)는 반도체 설계·검증을 자동화하는 필수 툴이다. 케이던스(CDNS), 시놉시스(SNPS)가 양강 구도를 이룬다. 데이터센터 리츠(REITs)는 금리·전력계약 구조에 민감하므로 선별이 필요하다. 이퀴닉스(EQIX), 디지털 리얼티(DLR)는 AI 워크로드 수요의 수혜가 기대된다.
키움 미국테크100 월간 보호배분 ETF는 미국 테크 100과 미 단기국채(T-Bill) 비중을 월별 신호로 조절해 낙폭을 완화한다. TIMEFOLIO 미국나스닥100채권혼합50액티브 ETF는 나스닥100과 단기채를 50:50으로 배분해 변동성을 낮춘다. 옵션 운용이 가능한 투자자는 보호적 풋·콜러로 급락 위험을 보험처럼 관리할 수 있다.
시장 밖에 서지 말되, 냉정하게 고르라
거품론이 제기하는 문제의식 - 낮은 데이터센터 수익률, 협력 발표의 실효성, 과도한 선(先)투자 - 은 유효하다. 동시에 베센트의 “아직 3회 초”라는 판단과 젠슨 황의 피지컬 AI 구상은 생산성의 실물화가 이제 시작임을 상기시킨다.
해법은 단순하다. 상방은 열어두고 하방은 규칙으로 관리하라. 그리고 선택의 기준은 숫자다. 단위비용 하락과 현장 지표 개선을 꾸준히 증명하는 기업, 전력·활용률·감가상각의 방정식을 유리하게 풀어내는 기업에 가중치를 높이라. AI가 ‘광풍’인지 ‘호황’인지는 결국 분기실적이 말해줄 것이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