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거물들 옭아맨 샘 알트먼
엔비디아, 오라클 등 거액 투자 유치 … MS의 신중론 vs 오라클의 통큰 투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일(현지시간) 세계 최대 반도체 및 클라우드 기업들이 수익성도 불확실한 오픈AI의 성공에 거액을 베팅하면서, 이 회사는 사실상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 존재가 됐다고 보도했다. 오픈AI와의 거래는 엔비디아, 오라클, AMD, 브로드컴 등 파트너사들의 주가를 폭등시켰다. 지난 두 달간 이들 기업의 시가총액은 합산 6300억달러나 늘었다. 최근 미국 증시의 기술주 랠리를 이끈 것도 바로 이 거래들이었다.
알트먼의 거래 전략은 경쟁자들의 FOMO(놓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지난 1월 손정의 소프트뱅크 CEO가 알트먼과 함께 5000억달러 규모의 초대형 AI 인프라 프로젝트 ‘스타게이트’를 발표하자,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위기감을 느꼈다고 WSJ은 분석했다. 10년간 오픈AI에 칩을 공급해온 황은 경쟁자인 손정의에게 주도권을 빼앗길 수 없었다. 그는 비밀리에 오픈AI에 접근했고, 결국 지난달 엔비디아는 오픈AI에 최대 1000억달러를 투자하는 초대형 계약을 체결했다. 이 거래에는 오픈AI가 데이터센터 건설을 위해 빌릴 대출금 일부를 보증하는 방안까지 논의됐다. 오픈AI가 돈을 갚지 못하면 엔비디아가 수십억달러의 빚을 떠안게 되는 위험한 구조다.
알트먼의 비전은 야심차다. 그는 오픈AI의 장기 목표가 2033년까지 독일 전체 전력 사용량에 맞먹는 250기가와트 규모의 컴퓨팅 용량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원전으로 치면 250개에 해당하는 규모로, 현재 기준으로 10조달러가 넘는 비용이 든다.
문제는 규모의 불균형이다. 오픈AI가 엔비디아, 오라클과의 계약만으로 지불해야 할 컴퓨팅 비용은 6500억달러에 달한다.
반면 올해 예상 매출은 130억달러에 불과하다. 회사 규모에 비해 계약 규모가 터무니없이 크다고 WSJ은 지적했다. 이 불균형을 메우기 위해 파트너사들이 오픈AI의 칩 구매 비용을 간접 지원하는 ‘순환 거래(Circular Deals)’가 이뤄지고 있다. AI에 대한 열광이 단 하나의 회사, 즉 알트먼의 비전에 의존하는 거품으로 변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 CEO는 알트먼이 요청한 1000억달러 규모의 스타게이트 참여를 거절하며 신중론을 폈다.
그는 “어느 시점에서는 공급과 수요가 일치해야 한다”며 과도한 공급 투자는 끔찍한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결국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픈AI의 독점 클라우드 제공업체 지위를 일부 내려놨다.
그러자 오라클이 기회를 잡았다. 오라클은 오픈AI와 3000억달러 규모의 클라우드 계약을 체결했고, 이 소식에 주가가 급등하며 시가총액 1조달러에 근접했다. 하지만 이 거래로 오픈AI는 연평균 600억달러를 지불해야 하는 막대한 의무를 떠안았다.
알트먼은 엔비디아의 경쟁사인 AMD와 브로드컴도 끌어들였다. 그는 AMD의 ‘AI 발전’ 행사에 참석해 AI 아이콘으로 추앙받았고, AMD의 미검증 칩을 쓰는 대가로 AMD 미래 주식의 최대 10%를 받는 파격적인 계약을 체결했다. 이 소식에 AMD 주가는 하루 만에 24% 폭등했다.
브로드컴은 엔비디아의 거래 규모와 똑같이 10기가와트의 컴퓨팅 용량을 제공하는 계약을 맺으며 이 경쟁에 불을 지폈다.
알트먼의 전방위 거래 공세는 실리콘밸리 거대 기업들의 운명을 오픈AI의 성공에 완전히 묶어(tether their fates) 놓았다. 그 결과 이 스타트업은 ‘실패하기엔 너무 커버린’ 존재가 됐다는 게 WSJ의 진단이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