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펀드’ 검사 확대,‘즉시연금' 내주 현장점검…금감원 ‘소비자보호’ 전환
이찬진 원장 ‘불완전판매’ 검사 지시
공모펀드 ‘형식적 심사’ 변화 예고
“금융상품 판매 관행 크게 달라질 듯”
전액 손실이 발생한 ‘벨기에 펀드’의 불완전판매 의혹에 대해 금융감독원이 검사를 확대하고 있으며 즉시연금 불완전판매와 관련해 조만간 보험사들에 대한 현장 점검에 착수할 예정이다.
이찬진 금감원장이 지난 8월 취임 직후부터 강조해온 ‘소비자보호’에 대한 실제 조치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24일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 원장이 보여주기식, 피상적인 소비자보호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소비자보호와 직결된 문제들을 간과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상당하다”며 “금감원 내부적으로 큰 변화가 일고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이 지난 15일 벨기에 펀드를 판매한 한국투자증권, KB국민은행, 우리은행에 대해 현장 검사에 착수한 것도 이 원장이 직접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벨기에 펀드는 지난해말 손실이 확정됐고 올해 초부터 투자자와 판매사간 배상안을 놓고 줄다리기가 이어졌으며, 금감원에도 민원이 제기된 사안이다. 판매사들의 자율 배상이 진행됐지만 배상 비율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만이 계속됐다.
투자자들은 “후순위 투자 구조에 대해 설명을 듣지 못했다”며 불완전판매를 주장했지만 그동안 별다른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이 원장 지시에 따라 검사가 시작된 것이다. 벨기에 펀드는 투자자 자금 약 900억원을 벨기에 정부기관이 사용하는 현지 오피스 건물의 장기 임차권에 투자했다. 5년간 운용 후 임차권을 매각해 수익을 분배할 계획이었지만 코로나 사태로 부동산 가치가 하락하면서 매각에 실패했고 전액 손실이 발생했다.
금감원은 현장 검사 과정에서 부동산 가치가 10~20%만 하락해도 후순위 투자자는 전액 손실이 발생하는 펀드 구조를 확인했다. 벨기에 펀드는 지분 투자에서 후순위로 들어갔는데, 사실상 선순위 투자자인 벨기에 금융회사만 투자금을 전액 회수하고 후순위는 전액 손실을 본 것이다.
부동산 가치 하락에 따른 투자 위험이 상당히 큰 펀드임에도 투자자들이 그런 사항들을 제대로 설명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금감원은 파악하고 있다. 금감원은 이번 주부터 검사 인력을 추가로 투입해 검사를 확대하고 있다.
21일 열린 금감원 국정감사에서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행 증권신고서, 공모신고서에 대한 심사가 형식적으로만 이뤄지고 있다”며 “판매사나 운용사의 책임을 물을 때 설명의무에만 중점을 두기에, 그 외의 경우에는 소비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벨기에 펀드가 공모펀드로 금감원의 심사를 받았지만 사실상 형식적으로 심사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투자설명서가 91페이지 정도인데, 후순위라고 명기한 건 딱 한 줄”이라며 “후순위라는 걸 투자자들이 어떻게 인지하겠느냐”고 말했다.
이 원장은 “금감원에서 바꾸려는 부분이 이러한 형식적인 대응이고, 전면적으로 개선하려고 한다”며 “상품 설계 단계부터 엉터리 같은 상품을 필터링하고, 상품 출시시 신고 내용을 면밀히 보기 위해 계속해서 실무적으로 보완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향후 공모펀드에 대해 형식적인 요건을 중심으로 따졌던 심사가 실질적인 내용까지 검토하는 방식으로 강화될 전망이다.
금감원은 이르면 다음주 즉시연금을 판매한 삼성생명, 동양생명, 미래에셋생명에 대해서도 현장 점검에 착수할 예정이다.
최근 대법원은 이들 생명보험사들이 즉시연금 가입자들에게 보험금 공제와 관련한 설명 의무를 충분히 이행하지 않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다만 보험계약은 유효하다고 판단했는데, 계약 전부를 무효로 할 경우 오히려 계약자에게 불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고 회사가 고객에게 지급해야 하는 생존연금액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감원은 대법원이 불완전판매를 언급한 만큼, 관련 내용을 확인할 필요가 있고 불완전판매에 따른 판매사들의 제재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보험사들은 즉시연금 보험을 2000년도부터 판매했다.
금융권에서는 금감원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설명의무 위반 등 불완전판매와 관련된 이슈가 크게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 규모가 큰 해외 부동산 펀드에서 손실이 커질 경우 벨기에 펀드와 같은 일이 잇따라 발생할 수 있다. 또 보험설계사 중심으로 판매되는 보험상품과 관련한 설명의무 위반 문제도 커질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과거 판매했던 상품에 대해 현재 금융소비자보호법이라는 기준의 잣대를 들이댈 경우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며 “금융상품 판매 관행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