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각자도생에서 생태계 경제로의 전환

2025-10-27 13:00:10 게재

오래전 TV에서 흥미로운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새끼 곰 두 마리가 나들이를 나섰다가 몸집이 큰 낯선 곰을 만났다. 새끼 곰은 전속력을 다해 높은 나무 위로 달아났다. 곰은 다른 새끼 곰을 만나면 생존을 위협하는 잠재적 경쟁자로 간주하고 죽여버리기 때문이다.

정반대의 장면이 아프리카 초원지대에서 펼쳐졌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초식동물이 풀을 뜯던 중 무리 중 한 마리가 새끼를 출산했다. 이를 노리고 포식동물이 다가오자 동종의 초식동물들이 일제히 방벽을 형성해 새끼를 보호했다. 초식동물은 개체수가 많아질수록 방어력이 강해진다는 본능적 판단에 따른 행동이었다.

근대 이후 서구 열강의 과학자들은 약육강식의 위계질서가 자연계를 지배한다고 여겨왔다. 자신들을 정점으로 형성된 인간 사회 질서를 자연계에 그대로 대입시킨 결과였다. 약육강식이 자연계를 지배한다면 개체수가 위계질서의 상층부로 올라갈수록 많아지고 하층부로 내려갈수록 적어져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자연계를 지배하는 원리는 상생협력하는 생태계다. 생명체 구성의 기본 단위인 세포도 서로 성격을 달리하는 호기성-혐기성 박테리아가 공존 공생하는 고도의 유기적 협력체이다. 약육강식의 포식자 논리는 예외적인 돌출현상일 뿐이다.

약육강식 논리에 따르면 다른 경제주체는 경쟁자 혹은 적이거나 먹잇감일 뿐이다. 살아남으려면 경쟁자를 밝고 올라서야 하며 나 자신만이 나를 책임져줄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 안에는 각자도생의 약육강식 논리가 극단적 형태로 횡행했다. 과연 각자도생의 약육강식은 불가항력의 시장 원리일까?

AI시대 도래로 각자도생 전략에서 벗어나

지난 몇십 년 동안 일단의 글로벌 선두기업들은 다양한 경제주체들이 상생협력하는 생태계 전략으로 경쟁력을 극대화했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2007년 애플은 아이폰 출시와 함께 생태계 전략의 원조로 불리는 앱스토어를 선보였다. 앱스토어에 출시한 앱 개발자들은 수익의 70%를 보장받았다. 사용자들은 아이폰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앱을 자유롭게 다운받을 수 있었다. 결과는 아이폰의 폭발적 판매로 이어졌다. 앱스토어가 플랫폼 기능을 하면서 앱 개발자, 사용자, 애플이 함께 이익을 누리는 구조였다. 인터넷 시대 기린아로 떠오른 구글은 유튜브 안드로이드 구글 맵 등을 무료 플랫폼으로 제공하면서 광대한 생태계 형성으로 막대한 광고 수익을 창출했다.

대만의 TSMC는 위탁생산이라는 다소 소극적 전략으로 출발했으나 오늘날에 이르러 반도체 제조 플랫폼 기업으로 위상을 확보함으로써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허브가 되었다. 중국의 대표 기업 화웨이는 렌추후 R&D센터를 플랫폼 삼아 다양한 기업들과 개방적 기술 융합을 추구함으로써 도시관리 시스템 등 초거대 상품을 개발하는 전과를 올려 왔다.

AI시대의 도래와 함께 각자도생에서 벗어나 플랫폼 기반의 생태계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를 갖고 이야기해 보자. 앞으로 헤아릴 수없이 많은 AI 모델이 출현할 것으로 예상이 된다. 주목할 점은 AI 모델마다 최적의 칩이 모두 다르다는 사실이다. 기존 대기업이 이 모두에 맞게 설계 제조할 수 없다. 한없이 다양해지고 수시로 바뀌는 고객 수요 대응 맞춤형 설계는 상당 부분 팹리스 스타트업 몫일 수밖에 없다.

상생협력 생태계가 가장 강력한 경쟁력

이미 시장은 그러한 방향으로 재편되어 가고 있다. 때맞추어 세미 파이브와 같은 스타트업의 설계 역량을 보완해 주며 빠르게 생산으로 연결해 주는 설계 플랫폼 기업이 등장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리벨리온, 퓨리오사AI 등 독자적인 패러다임의 AI 칩 개발을 추구하면서 크게 주목받는 기업들도 있다.

삼성 SK하이닉스 등 대기업은 스스로 플랫폼이 되어 이들 신생 기업들과 상생 협력하는 생태계를 형성할 때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 그러한 방향으로 첫걸음을 떼기는 했으나 갈 길이 멀어 보인다. K-뷰티는 고객 맞춤형을 지향하며 크고 작은 기업들이 건강한 생태계를 형성함으로써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산업으로 부상했다.

상생협력하는 생태계를 형성할 때 가장 강력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음을 입증해 준다. 시대는 너도나도 각자도생에서 벗어나 생태계 경제로 나아갈 것을 요구한다.

박세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