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시진핑, ‘무역 휴전’ 선택

2025-10-27 00:00:00 게재

정치·경제적 셈법 고려한 전략 … 미중 갈등 본질 해소는 미흡

지난 25일(현지시간) 중국 허리펑 부총리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미·중 무역회담을 마치고 기자단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0일 부산 정상회담을 앞두고 무역 갈등의 최대 쟁점이던 희토류 수출 통제와 100% 추가 관세 부과를 일시 유예하기로 방향을 튼 것은 정치·경제적 셈법을 고려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 제한은 기술·에너지·방위산업 전반에 걸친 미국의 전략 산업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무기지만, 전 세계 공급망에도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이에 맞서 미국이 경고한 ‘100% 추가 관세’ 역시 중국의 대미 수출을 사실상 차단하는 조치였다. 양국 모두 극단적 조치를 실행에 옮기기보다는 이를 협상 지렛대로 활용하며 긴장을 고조시켜왔다.

결과적으로 이번 유예 합의는 충돌 일보 직전까지 갔던 상황에서 갈등을 일시 정지시키는 일종의 ‘휴전 선언’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안인 펜타닐 문제, 미국산 농산물 수출 확대, 틱톡 매각 등을 카드로 활용하며 협상의 주도권을 쥐었다는 인상을 주고자 한다. 그는 그간 지지층을 향해 “중국으로부터 더 나은 거래를 이끌어내겠다”고 강조해왔으며 이번 성과를 ‘강한 리더십의 결과’로 내세울 가능성이 높다.

중국 역시 일정 부분 양보하는 모습을 취함으로써 핵심 이익을 방어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특히 펜타닐 원료물질의 통제나 틱톡의 미국 내 사업 매각 등은 비교적 정치적 부담이 덜한 사안으로 이를 ‘양보 카드’로 활용하면서 무역 갈등의 확전을 막는 실익을 택한 셈이다.

중국 입장에서 미국과의 관계 악화는 수출·투자·기술 협력 등 여러 방면에서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줄 수 있으며 시진핑 정부는 내부 경제 회복에 집중해야 하는 국면에 처해 있다.

이번 합의는 세계 경제에도 단기적으로는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희토류는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첨단 무기체계 등 다양한 산업에서 필수적인 자원이다. 중국이 수출을 통제할 경우 한국 일본 미국을 비롯한 주요 제조국들이 대체 공급처를 찾는 데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며 국제 원자재 시장은 물론 관련 산업 주가에도 연쇄적 충격이 불가피하다.

말레이시아에 열린 이번 고위급 무역 회담에선 △수출 통제 유예 △관세 동결 연장 △농산물 무역 확대 △펜타닐 단속 협력 △틱톡 매각 이행 등이 포괄적으로 다뤄졌으며 양측은 이들 사안에 대해 “건설적이며 실질적인 기본 합의에 도달했다”고 26일 공식 확인했다.

하지만 이러한 유예 조치가 갈등의 본질을 해결한 것은 아니다. 희토류 공급망의 장악력, 디지털 기술의 통제권, 전략 물자 수출 규제, 조선업·물류업에 대한 무역법 301조의 적용 범위 등은 여전히 미중 간 팽팽한 입장 차가 존재하는 영역이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도 이번 합의를 ‘기본적인 원칙의 합의’로 표현하며 “세부 사항은 각국의 내부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밝혀 실질적 이행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변수는 양국의 국내 정치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시아 순방을 통해 외교적 성과를 쌓아야 하는 입장이다. 그는 이미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대규모 대미 투자를 유도하려는 목표도 설정한 상태다. 반면 시진핑 주석은 공산당 내부 결속과 민생경제 안정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내부 정치 환경 역시 이번 ‘봉합적 합의’의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향후 관전 포인트는 이번 유예 조치가 얼마나 지속되느냐다. 관세 유예 조치의 공식 만료 시점은 11월 중순으로 미중 정상회담 이후 후속 협상에서 연장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만일 양국 간 신뢰가 다시 흔들릴 경우 언제든 기존 합의가 무효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 시장은 여전히 높은 불확실성에 놓여 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정재철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