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원유 12억배럴 비축…역대 최대
미국제재 대비 전략적 대응
이코노미스트 26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중국이 원유와 가스, 금속 자원을 사상 최대 규모로 비축하며 미국의 제재 강화에 대비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예상되는 무역 압박과 관세 충격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전략이다.
산둥성 칭다오 인근 둥자커우 해안의 대형 원유 저장시설에는 최근 1000만배럴이 추가로 채워졌다. 전체 저장량은 2400만배럴로, 개장 2년 만에 절반을 넘겼다. 위성사진에서도 확인될 정도로 빠른 속도로 탱크가 채워지고 있다.
데이터업체 카이로스(Kayrros)는 올해 2월 이후 중국의 관측 가능한 원유 비축량이 1억1000만배럴 증가해 총 12억배럴에 달했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 전략비축유의 3배 규모로, 중국 전체 저장용량(20억배럴)의 60%가 채워진 상태다. 현재 속도로 비축이 이어질 경우 내년에는 15억배럴까지 늘어나 약 150일 치 수입량을 자체 보유하게 된다.
중국은 이란·러시아·베네수엘라 등 미국 제재 대상국에서 원유를 집중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세 나라의 대중 수출량은 9월 하루 59만배럴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주요 석유기업을 겨냥해 추가 제재를 예고했지만, 달러 결제망을 사용하지 않는 중국 정유사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천연가스 비축도 확대 중이다. 현재 중국은 연간 30억~40억입방미터의 가스를 비축하고 있는데, 이는 전체 수요의 10%에도 못 미친다. 7월에는 대형 지하 저장소에 7억입방미터를 추가했으며, 액화천연가스(LNG) 저장용 초대형 탱크 건설도 속도를 내고 있다.
금속 자원 확보도 비슷한 양상이다. 영국 팬뮤어리버럼은행의 톰 프라이스 애널리스트는 “중국의 산업 생산이 둔화했음에도 구리·아연·니켈 수입이 급증했다”며 “지난 20개월 동안의 비축분이 각각 연간 수요의 20%, 50%, 108%에 해당한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2019년 시진핑 주석의 지시로 7년간의 자원 자립 계획을 시행 중이다. 세제 감면과 투자 확대를 통해 원유 생산량은 2019년 하루 380만배럴에서 현재 440만배럴로 늘었고, 천연가스 생산도 50% 증가했다. 석탄 채굴량 역시 재확대되고 있으며, 정부는 지난 9월 8개 부처 합동으로 10대 금속 탐사 계획을 발표했다.
이 같은 비축 전략은 단기적으로 중국의 협상력을 높이고 있다. 에너지 시장에서 중국은 ‘가격 스윙 공급자(swing supplier)’로 부상하며, LNG를 되팔아 차익을 남기거나 러시아산 원유를 비공식 경로로 조달하며 세계 유가 구조를 흔들고 있다.
하지만 부작용도 커지고 있다. 유가가 내년 배럴당 10~20달러 하락할 것이란 전망 속에서, 중국은 비싼 가격에 사들인 원유로 매달 수십억위안을 낭비할 위험을 안고 있다. 브라질산 대두 수입 확대 등으로 식량 공급선도 특정 국가에 집중됐다.
나토 관계자는 “중국의 식량 수입원은 10년 전보다 더 좁아졌으며, 브라질의 기상이변이나 정치 불안이 발생하면 공급망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의 비축 정책은 지금까지는 성공적이지만, 그만큼 큰 도박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