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북 제재 논의 가능” 첫 언급

2025-10-28 13:00:06 게재

북미협상 재개 신호탄 될까 … 중국·러시아와 밀착 중인 김정은 반응은 미지수

2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쿠알라룸푸르에서 도쿄로 향하는 전용기 에어포스원 기내에서 기자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과의 정상회담에서 대북 제재(sanctions)를 협상 의제로 삼을 수 있다고 밝히면서 북미 대화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한 뒤 처음으로 제재 완화를 거론한 것으로 과거 1기 정부 당시와 유사한 협상 구도가 다시 작동될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현재 북한은 러시아 및 중국과의 밀착을 통해 제재 회피 능력을 키운 상황이라 미국의 제재 완화 카드에 반응할지는 불분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일본으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서 취재진과 만나 “우리에게는 제재가 있다. 이는 논의를 시작하기에 꽤 큰 사안이며 아마 이보다 더 큰 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29~30일 방한을 앞두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던진 사실상의 메시지로 제재 완화나 해제를 유인책 삼아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김 위원장과의 첫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선언하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열린 2차 정상회담에서는 김 위원장이 영변 핵시설 폐기를 조건으로 대북 제재 대폭 완화를 요구한 데 반해, 트럼프 대통령은 ‘영변 플러스 알파’ 수준의 광범위한 비핵화 조치를 요구하며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협상이 결렬됐다.

재집권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에도 공식적으로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미국 측은 ‘전제 조건 없는 대화’를 강조하며 비핵화 요구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일단 대화 재개 자체에 방점을 두고 있다. 김 위원장이 이미 ‘비핵화 포기’를 선언한 상황에서 조건을 낮춰서라도 소통의 실마리를 찾겠다는 실용적 접근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과거처럼 제재 완화를 절실히 원할 것이라는 기대는 점점 힘을 잃고 있다. 북한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군사적으로 지원하는 대가로 식량과 에너지 등 직접적인 보상을 받고 있고, 가상화폐 해킹을 통해 핵·미사일 개발 자금도 자체 조달하고 있다. 여기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와 중국이 제재 집행을 사실상 외면하고 있어, 국제 제재의 실효성 자체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9월 21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제재 풀기에 집착하여 적수국들과 그 무엇을 맞바꾸는 협상 따위는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선언하며 제재 완화에 대한 기대감을 스스로 차단했다. 미국이 아무리 제재 완화 카드를 흔든다 해도 북한의 태도 변화가 쉽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전문가들 역시 제재 완화가 협상 테이블을 여는 열쇠가 되기엔 힘이 약하다고 본다. 트로이 스탠거론 카네기멜런대 전략기술연구소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화 의지는 분명하지만 그가 김정은을 실질적인 대화로 끌어낼 수 있는 카드는 제한적”이라며 “제재 완화의 가치는 이미 많이 떨어졌다”고 평가했다.

이번 제안이 완전히 무의미하다고 보긴 어렵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러시아의 지원이나 제재 우회를 통해 얻는 경제적 이익만으로는 북한이 원하는 수준의 경제 개발을 이루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에서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핵무기를 보유한 나라)’로 지칭하며 김 위원장의 핵보유국 지위 욕구를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듯한 언행을 보이고 있다.

시드 사일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고문은 “어떤 형태든 제재 완화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진전을 이루려 한다는 신호가 될 수 있다”면서 “문제는 김정은이 미국의 이 메시지에 어떻게 반응할지”라고 말했다.

미국이 다시 꺼내든 ‘제재-비핵화 맞교환’이라는 고전적인 협상 공식이 얼마나 현실성을 가질지, 또 김 위원장이 어떤 전략적 판단을 내릴지가 향후 북미 관계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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