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바이오, 복제약에서 혁신 단계로 이동중

2025-10-28 13:00:07 게재

정부 지원·빠른 임상·자본 투입으로 글로벌 진출 가속

중국 제약 산업이 복제약 중심 구조를 벗어나 세계 혁신 의약의 새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27일(현지시간) 보도한 바에 따르면, 중국 제약사들은 올해 해외 기술수출 계약 93건, 총 850억달러 규모를 체결하며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복제약을 주로 만들던 산업이 이제는 ‘신약 수출국’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평가다.

바이오텍 전문 투자자 브래드 론카는 “10년 전 중국에는 바이오 산업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며 “지금은 거의 모든 글로벌 제약사가 중국에서 신약 후보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대표적인 기업은 장쑤성의 항루이제약이다. 1970년대 소독제 제조업체로 출발한 항루이는 1990년대 복제 항암제를 개발하며 성장했고, 1997년 민영화 이후 자체 연구개발(R&D)에 집중했다. 현재는 체중감량제, 알츠하이머, 항암제 등 다양한 신약 후보를 보유한 중국 최대 민간 제약사로 꼽힌다. 맥쿼리캐피털의 토니 렌 연구책임자는 “항루이는 검증된 연구력과 글로벌 기술이전 실적, 전문 경영을 두루 갖춘 ‘중국 제약의 바로미터’”라고 평가했다.

남중국의 아케소는 이중항체 항암제 ‘이보네시맙(ivonescimab)’으로 주목받았다. 이 약은 중국 임상에서 머크의 ‘키트루다’보다 암 억제 효과가 높게 나타나며 지난해 중국 당국의 승인을 받았다. 주가는 90% 넘게 뛰었지만, 북미·유럽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3상에서는 동일한 결과가 재현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중국 내 임상 데이터의 신뢰성을 더 검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성장은 정부의 전략적 지원 덕분이다. 2015년 ‘중국제조 2025’와 13차 5개년 계획에서 바이오테크를 핵심 산업으로 지정한 뒤, 연구 인프라와 임상 승인 절차를 대폭 개선했다. 포순제약(Fosun Pharma)의 왕싱리 임원은 “정부의 자금·규제 지원과 병원 임상 인프라 확충, 지방정부의 경쟁적 투자로 산업 전반이 가속화됐다”고 말했다.

의약품감독국(NMPA)은 2만건이 넘는 심사 적체를 해소하며 임상 승인 기간을 500일에서 87일로 단축했다. 여기에 해외에서 경력을 쌓은 중국 과학자들의 귀국이 더해졌다. 미국 등지에서 연구하던 과학자들이 대거 창업하거나 연구개발에 참여하면서 기술력의 핵심이 강화됐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 진출에는 여전히 장벽이 있다. FT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항루이의 항암제에 대해 품질 관리 문제를 이유로 승인 결정을 미뤘다고 전했다. 이에 중국 제약사들은 미국 기업과의 공동 임상이나 기술이전 계약을 통해 우회로를 찾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서방 제약사들이 체결한 대형 기술이전 계약의 3분의 1이 중국 바이오기업과의 협력이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기업이 자체 임상과 승인 과정을 모두 수행하려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며 “현재는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분석했다. 또 중국 내 낮은 약가 정책도 문제로 지적된다. 정부의 병원 공동구매제도(NRDL)로 인해 약값이 세계 최저 수준이어서 기업들이 국내에서 충분한 수익을 내기 어렵다. 론카는 “중국 바이오기업의 성패는 결국 미국 시장에서의 성과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FT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중국 바이오기업의 해외 기술수출 누적액은 850억달러에 달하며, 홍콩 항셍 바이오테크 지수는 올해 들어 80%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흐름을 “위협이 아닌 기회”로 본다. 이코노미스트의 샤일레시 치트니스 기자는 “중국의 빠른 임상 절차와 풍부한 인력, 낮은 비용 구조는 신약개발 속도를 높이고 있다”며 “더 많은 치료제가 더 저렴한 가격으로 나올수록 전 세계 환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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