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션 광풍’에 빅테크 흔들…하루 1천억달러 급등락
초단기 옵션·레버리지 ETF 확산에 주가 요동쳐
“대형주 동반 매도 땐 시장 취약성 드러날 수도”
올해 미국 증시에서는 하루 만에 시가총액이 1000억달러 이상 출렁이는 초대형 기술주가 속출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8일(현지시간) “올해 들어 하루 동안 1000억달러 이상 움직인 사례가 119건으로 사상 최대”라며 “옵션 거래와 레버리지 ETF의 확산이 주가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주가가 평소 범위를 벗어나 급등락하는 현상이 발생한 건수는 이미 2024년 연간 발생 건수(84건)을 넘어섰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의 글로벌 크로스자산 퀀트 전략 책임자 아비 데브는 “시가총액 상위 종목이 하루에 10%, 20%, 30%씩 움직인다”며 “이런 가격 움직임은 과거에는 매우 드물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요동 장세’의 배경에는 파생상품 시장이 있다. 옵션이란 특정 종목의 주가가 오르거나 내릴지에 ‘미리 베팅’하는 계약이다.
최근 개인투자자와 헤지펀드가 실적 발표나 경기 지표 발표를 앞두고 ‘제로데이’(만기 하루짜리) 옵션 거래에 몰리면서 거래량이 2021년 ‘밈주식’ 열풍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개인이 전체 단일종목 옵션 거래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거래가 단순한 투기성 베팅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옵션을 판매한 시장조성자(증권사 등)는 주가가 급등하거나 급락할 경우 손실을 막기 위해 해당 종목을 직접 사고파는 ‘헷지(위험회피)’ 거래를 한다. 이 과정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면서 주가 움직임이 더 커진다.
레버리지 ETF도 같은 역할을 한다. 특정 종목의 수익률을 2배, 3배로 따라가도록 설계된 상품으로, 주가가 오르면 추가 매수를, 떨어지면 추가 매도를 해야 한다. 이런 구조는 오히려 주가의 방향성을 더 극단적으로 만든다. 최근 미국의 자산운용사 볼라틸리티 셰어스(Volatility Shares)는 엔비디아·알파벳·테슬라 주가를 5배로 추종하는 ETF 출시를 신청하기도 했다.
UBS의 맥스웰 그리나코프 미국 주식 파생전략 책임자는 “시장 전체가 너무 들떠 있고, 자산들이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상황에서 작은 충격 하나로 연쇄 매도(flow cascade)가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JP모건은 지난 10일 월가가 4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을 때 레버리지 ETF가 비율을 유지하기 위해 260억달러어치 주식을 강제 매도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초대형 기술주들이 개별적으로 급등락하면서도 S&P500 지수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UBS는 “AI, 세제 개편, 미중 무역갈등 등 요인으로 종목 간 움직임이 엇갈리며 상관성이 낮아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FT는 “이들 종목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시장의 ‘취약성’이 드러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