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행정부 일관성 상실, 중국 협상팀 당혹케해
트럼프 직감 따른 의사결정 부처간 토론없어 혼선 일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주석이 무역 관계 안정화를 모색하는 가운데, 워싱턴의 일관성 없는 신호와 정책 혼선이 합의 이행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9일 현지 전문가와 전직 관리들의 분석을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의 예측 불가능한 의사결정이 협상 동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핵심은 조율 시스템의 붕괴다. 전 국가안보회의(NSC) 출신 제프리 문은 “오늘의 사실이 내일 뒤집히는 환경에선 협상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절차와 심사보다 직감을 중시해 부처 간 검토와 토론이 생략되기 쉽고, 그 틈을 타 대중 강경파가 독자 노선을 밀어붙인다는 것이다. 전 중앙정보국(CIA) 출신 데니스 와일더 교수는 “대통령의 집중력이 짧고 세부 보고서를 읽지 않아, 누가 집무실에 들어오느냐에 따라 정책이 오락가락한다”고 설명했다.
혼선은 현장에서 충돌로 이어졌다. SCMP는 외국인 투자를 독려하던 와중에 이민 당국이 조지아주 현대·LG 배터리 공장 현장에서 근로자 500여명을 단속한 사건을 지목했다. 블루칼라 일자리 확대와 무관용 반이민 정책이 정면충돌한 상징적 사례다. 매슈 굿맨은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는 전형”이라고 꼬집었다. 트럼프가 중국 유학생 확대를 검토한 것은 비자 취소를 압박하던 강경파와 배치되고, 일본·한국의 대규모 대미 투자 발표 직후 중국 자본 유치를 거론한 것은 대중 투자 심사를 강화한 행정명령과 모순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조율 장치의 약화도 문제로 지적됐다. 행정부 내 갈등을 조정하던 NSC가 축소되면서 대통령이 관심 두지 않는 영역에서 부처들이 제멋대로 움직이게 됐다는 평가다. 상무부의 중국 제재 확대 이후 베이징이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 들어 글로벌 공급망이 긴장했지만, 워싱턴은 이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의 시각은 복잡하다. 유라시아그룹 제레미 찬은 “중국이 트럼프를 아첨과 허세를 부리다 금세 물러서는 인물로 보면서도, 실제로는 대통령이 개입하지 않은 결정이 많아 미국의 정책 형성 과정을 이해하지 못해 당황하고 있다”고 전했다.
선양에서 근무했던 그는 “중국은 정상 간 만남이 필요하다고 보지만 트럼프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진 않는다”고 덧붙였다. 스팀슨센터 윤선 선임연구원은 “베이징이 혼선을 내부 권력 다툼 탓으로 돌리면서도, 미국이 중국의 대응을 시험하려 새 의제를 계속 던지는 전략일 가능성도 제기한다”고 말했다. 세부에 무심한 태도가 반드시 통제 불능을 뜻하진 않는다는 해석이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총괄 비전의 부재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일관된 대중 전략 없이 다층의 상충 신호를 쏟아내 협상 신뢰와 예측 가능성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본다.
와일더 교수는 “트럼프 하의 미국에는 하나의 중국 정책이 아니라 여러 개의 중국 정책만 존재한다”고 정리했다. 캐나다와의 무역 중단 같은 돌발 발언이 반복되며 시장과 동맹국의 피로감이 커진다.
독일 마셜펀드의 보니 글레이저 이사는 “중국의 희토류 대응이 협상을 국제 이슈화해 역효과를 냈다”고 지적했다. NSC 축소와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 스티븐 밀러 등 강경파의 영향력 확대는 조정 실패를 키우며 양국의 안정화 목표를 더욱 멀어지게 만든다는 평가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