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전단채 피해자들 “판매사 신영증권도 책임”

2025-10-30 13:00:01 게재

전단채 피해자 비상대책위, 여의도 본사 집회

‘불완전판매 가능성’ 거론, 증권사 책임론 제기

노후자금·암 치료자금 묶여 경제적 위기 상황

홈플러스 기업회생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그동안 대주주인 MBK파트너스를 향해 각을 세웠던 매출채권 유동화 전자단기사채(ABSTB) 개인투자자들이 판매 증권사를 겨냥하고 나섰다. 이들이 불완전판매 가능성을 제기하며 피해액 일부를 선지급하라고 나서면서 판매 주관사인 신영증권 등 증권사 책임론이 제기된다.

30일 홈플러스 물품구매 전단채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전단채 비대위)는 서울 여의도 신영증권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피해 최소화를 위해 증권사가 선지급이나 가지급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단채 비대위는 애초 홈플러스와 MBK에 책임을 물었다. 하지만 사태 해결이 지연되자 이들은 고객 보호보다 판매 실적에만 치중하는 증권사의 영업행태도 문제라며 판매사 책임론을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전단채 비대위는 지난 8월 금융감독원에 집단 민원을 제출하며 최소 40% 이상 선지급을 요구했다. 이후 하나증권과 신영증권 등 증권사 앞 시위로 압박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논란인 ABSTB는 홈플러스가 물품을 구매할 때 외상으로 결제한 카드 이용대금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했다. 신영증권은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신용카드사들로부터 홈플러스 물품대금 카드채권의 권리를 양도받아 이를 기초로 연 6%, 투자기간 3개월짜리 ABSTB를 발행했다.

신영증권은 이 상품을 자체 리테일 창구를 통해 팔거나 국내 증권사를 통해 개인 등에게 판매했다. 그러나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간 홈플러스가 카드대금을 상환하지 못하면서 투자자들이 손실을 입게 됐다.

전단채 비대위는 이 과정에서 불완전판매 가능성을 제기한다. 증권사가 ABSTB 발행과 판매 과정의 투자위험에 대한 충분한 상품심사와 준법감시, 내부통제, 설명의무, 위험의 고지 등 충분한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특히 ABSTB 피해가 단순한 기업회생에 따른 투자 손실이 아니라, 사기성 발행 구조와 불완전판매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사안이라는 것이다.

이의환 전단채 비대위원장은 “ABSTB 판매와 설명 과정에서의 불완전판매가 이뤄졌다는 증언이 다수의 피해자들로부터 나온다”면서 “증권사들도 비공식적으로는 그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영증권 등 증권사들은 공식적으로 불완전판매 가능성과 선지급에 선을 긋는다. 불완전판매 여부에 대한 금융당국 판단이 내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자의적으로 투자금을 지급할 경우 배임 논란 등에 휩싸일 수 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과거 선례로 신영증권 등의 선긋기를 비판한다. 전단채 비대위는 근거로 라임·디스커버리·옵티머스 사태 등에서 금융사가 투자금의 30~80%를 선지급한 전례를 제시했다. 2020년 라임 사태 당시 은행권은 환매 연기 펀드에 대해 원금의 절반가량을 먼저 지급했고, 디스커버리 사태에서도 기업은행·하나은행 등이 30~50%를 선지급했다.

옵티머스 사태 때는 NH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이 최대 70%까지 선지급하며 피해자들을 지원했다. 법적 의무가 없는 상황에서도 여론과 감독당국 권고, 신뢰 회복 필요성에 따라 금융사들이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이다.

홈플러스 유동화전단채 피해자와 입점점주협의회 등이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정무위 국정감사, 홈플러스 정상화 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신영증권 등 ABSTB를 판매한 증권사는 아직까지 홈플러스에 ‘사기를 당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판매사가 당초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했는지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지난 15일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홈플러스 임원 녹취록에 따르면, 자금 사정 악화로 2024년부터 납품대금에 최대 15%의 지연이자를 지급하는 가운데서도 지난 2월 4·10·17·25일 ABSTB를 발행·판매했다.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를 이행했다면 홈플러스 자금난을 파악하지 못했을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한발 더 나아가 피해자 일부에서는 증권사들도 홈플러스 부실을 알면서도 외면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한 피해자는 “이런 과정을 보면 주관사인 신영증권이 홈플러스의 자금난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면서 “고령자와 주부 등 상대적으로 금융 소외계층의 경우 홈플러스·카드사·특수목적법인(SPC)으로 연결된 홈플러스 전단채의 구조를 파악하지 못하고 증권사 설명만으로 구매한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금감원은 지난 3월 증권사를 통해 개인에게 판매된 홈플러스 어음·채권 판매 현황 조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현재 홈플러스와 MBK의 사기적 부정거래 혐의 관련 수사가 이뤄지고 있어 증권사들의 전단채 등 판매 과정을 들여다보는 데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이의환 위원장은 “피해자 대부분이 평생 모은 노후자금, 은퇴자금, 주택구입자금, 자녀 결혼자금, 암 치료자금 등 긴급한 가계자금을 1억원에서 3억원 정도를 투자했다”며 “또 중소기업들은 3개월짜리 단기채권에 단기 유동성 자금을 투자했는데 지금 8개월째 묶여있어 회사가 파산할 지경”이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지난 5월 전단채 비대위를 만난 금정호 신영증권 대표는 투자자들의 손실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면서 “그 말이 거짓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 결단을 내려 피해자 구제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장세풍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