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살롱
건강 100세 사회 출발점은 ‘움직임’이다
“요즘은 집 안에서도 몇 걸음 걷기가 힘들어요.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고, 넘어질까 봐 겁나요.” 외래 진료실에서 만난 82세 여성 환자의 말이다.
예전에는 손주들과 시장에 가고, 친구들과 노래방에도 다녔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외출이 두려워 하루 대부분을 거실 소파에 앉아 보낸다. 무릎 통증과 체력 저하로 활동이 줄면서 근육은 빠르게 약해졌다. 어느새 일상의 많은 부분을 혼자 해내기 어려워졌다. 그녀를 병들게 한 것은 질병 그 자체가 아니라 움직이지 않은 시간이었다.
우리 사회는 2024년 말,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우리나라는 전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 중 하나이고, 기대수명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23년 우리 국민의 기대수명은 83.5세로 선진국 중에서도 최상위에 속한다.
그러나 오래 사는 것 그 자체를 반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건강한 상태로 얼마나 오래 사는지를 나타내는 건강수명은 70세 전후에서 좀처럼 늘지 않는다. 10년 이상 질병과 장애 속에서 보내는 ‘불건강한 장수’가 되고 있다. “얼마나 건강하게 살아가느냐”는 초고령사회 속에서 우리가 마주한 근본적 물음이다.
운동의 강도보다 꾸준함이 중요
그 해답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최신 의학기술도, 값비싼 신약도 아니다. 움직임을 통해 건강을 도모하는 것, 즉 운동이다. 운동은 약보다 때로는 강력하고, 돈보다 효율적이며, 부작용이 적은 자연의 처방전이다.
인간의 몸은 본래 움직이도록 설계되어 있다. 근육은 써야 유지되고, 뼈는 하중을 받을 때 단단해지며, 관절은 움직여야 부드러워진다. 반대로 움직임이 멈추는 순간 우리 몸은 스스로를 ‘노화 모드’로 바꾼다. 노화로 인한 근감소증과 낙상, 심혈관질환, 당뇨병, 대사증후군, 우울증, 치매 등, 이들 질환의 공통분모는 ‘운동 부족’이다. 반대로, 꾸준한 신체활동과 운동은 이러한 질환들을 예방하고 이미 진행된 질병의 경과를 늦춘다.
하루 30분 빠르게 걷는 사람은 사망률이 30% 이상 낮고 주 2회 근력운동을 하는 노인은 낙상 발생이 25% 준 것으로 나타났다. 규칙적인 운동은 치매 발생률과 인지기능 저하를 20% 가량 감소시킨다고 한다. 움직임 하나가 생명을 연장하고 삶의 품격을 바꾼다.
그렇다면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 노년기의 운동은 세 가지 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근력운동이다. 이는 몸의 기둥을 세우는 일이다. 의자에서 일어나기, 쭈그리기(스쾃), 발뒤꿈치 들기, 그리고 밴드나 물병을 이용한 팔·다리 운동처럼 단순한 동작으로도 충분하다.
둘째, 균형운동이다. 한발 서기, 옆으로 다리들기, 발끝 걷기, 체중 이동, 가벼운 스트레칭은 낙상을 예방하고 자신감을 회복시킨다.
셋째, 유산소 운동이다. 하루 30분의 걷기나 실내 자전거 타기는 심폐 기능과 뇌의 젊음을 유지한다.
중요한 것은 운동의 강도가 아니라 꾸준함이다. 하루 5분의 움직임이 일주일 뒤에는 10분이 되고, 한달 뒤에는 생활이 된다. 문제는 의지가 아니라 환경이다. 혼자서는 시작하기 어렵다. 안전한 보행로, 지역사회 운동 프로그램, 체계적인 지도자, 그리고 함께 걷는 이웃이 필요하다.
초고령사회에서의 운동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의 책임이다. 병이 생긴 뒤 치료하는 의료를 넘어, 병이 생기지 않게 돕는 사회적 환경과 제도적 지원 체계가 절실하다.
건강수명의 연장은 곧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일이다. 의료비의 절반 이상이 만성질환 관리에 쓰이는 현실에서 예방적 신체활동은 최고의 사회적 투자다. 지역의 보건소와 복지관, 노인복지시설이 단순한 건강관리와 돌봄의 공간을 넘어 ‘움직임을 돕는 플랫폼’으로 바뀌어야 한다. 걷기 모임, 공동체 운동 프로그램, 맞춤형 홈트레이닝 교육이 확산된다면 고령사회는 달라질 것이다.
사회적 연대와 개인의 운동습관 어우러져야
움직임은 단순한 행동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를 지키겠다는 의지이자, 삶을 향한 선언이다. 건강한 100세 사회는 기술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이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사회적 연대 속에서 완성된다.
정부의 정책, 의료인의 진단과 처방, 운동전문가의 지도, 가족의 격려, 그리고 무엇보다 개개인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운동습관’이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움직임은 일상이 되고 건강은 지켜진다.
건강한 장수는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는다. 오늘의 한 걸음이 내일의 젊음을 만든다. 움직임은 생명이고, 운동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