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재판소원이 꼭 도입돼야 하는 이유
사법개혁 방안의 하나로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으로 삼는 ‘재판소원’ 도입 법안이 최근에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대법원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대법원의 반발은 과연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가? 재판소원을 논하기 전에 우선 ‘헌법소원’제도에 대해 살펴보자.
헌법소원제도란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이 규정하듯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하여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국민이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는 헌법적 수단이다. 이 ‘공권력’에는 국회의 입법작용, 법원의 사법작용, 행정부의 행정작용이 모두 포함된다. 따라서 사법작용의 하나인 법원의 재판이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오히려 연혁적으로 보면 헌법소원제도에서는 재판소원이 본질이다.
우리가 헌법소원제도를 설계할 때 모델로 삼은 독일에서는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이 헌법소원제도 도입의 중요한 배경이 됐다. 히틀러 시절 법원의 많은 오판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 침해가 많았다. 그러자 제2차대전 후에 이러한 법원의 재판을 헌법적 관점에서 헌재가 다시 판단해 오판으로 인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를 바로 잡자는 이유로 도입된 것이 헌법소원제도다. 따라서 재판소원은 헌법소원제도 탄생의 핵심이며 본질이다.
재판소원, 헌법소원제도 탄생의 핵심
1987년 개헌으로 헌법소원 제도를 도입하고 나서 1년 후인 1988년 헌법재판소법이 제정되는데, 그 1년 동안 대법원은 관할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에게 엄청난 로비를 한다. 그 로비의 결과물로 헌재법 제68조 제1항 단서는 헌법소원의 대상에서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라는 기형적인 단서조항을 두게 된다. 아무런 법리적인 근거도 없다. 오로지 대법원의 로비에 의해서 들어간 단서조항이다. 오히려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은 헌법소원제도의 본질인데, 본질을 뺀 채 껍데기만 남은 헌법소원제도가 만들어졌던 셈이다.
대법원은 재판소원 도입에 대해 몇가지 반대근거를 내세운다. 첫째, 4심제가 되어 국민들 부담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법원이 재판소원 제도를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헌재는 재판소원을 통해 법원 재판을 모든 법적 관점에서 심사하는 제4심 법원이 아니다. 사실관계에 대한 확정과 평가, 법령의 해석과 그 사건에의 적용, 법원 절차의 구체적 형성은 헌법상 사법권에 의해 부여된 법원의 권한이 맞다.
하지만 재판소원에서는 헌법만이 심사기준이기 때문에 법원이 헌법의 하위법인 법령을 올바르게 적용했는지에 대한 심사는 원칙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법원이 재판에 적용되는 법령의 해석과 적용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만 헌재는 법원의 재판에 대해 심사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재판소원은 법원의 재판에 대한 ‘제4심’이 아니라 법원의 재판에 대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루어지는 독자적인 ‘헌법심’이다.
둘째, 대법원은 재판소원 도입이 위헌 소지가 있다는 주장도 한다. 그렇지 않다. 헌법 제111조 제1항 제5호는 헌법재판소의 5가지 관장사항의 하나로 “법률이 정하는 헌법소원”이라고 규정한다. 헌법재판소법이라는 법률의 제68조 제1항에서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라는 부분만 삭제하면 된다. 어차피 법원의 재판이 헌법소원의 대상에서 제외된 것도 헌법이 아니라 법률이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라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셋째, 대법원은 재판소원 사건이 폭주해 헌재가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독일은 재판소원 사건들을 줄이기 위해 연방헌법재판소법이나 독일 헌재 판례를 통해 재판소원의 여러 요건들을 세밀하게 두고 있다. 헌재나 국회가 이를 면밀히 검토하여 정밀한 재판소원 제기와 인용의 요건들을 신속히 제시해 도입 초기에 예상되는 재판소원 사건 수를 줄이고 진정시킬 장치들을 서둘러 마련하면 될 일이다.
기본권 보호 더 두텁게 할 제도 반대이유 없어
재판소원을 도입하면 자신의 재판이 혹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지는 않았는지 판사들이 신중하게 살피게 될 것이다. 헌법재판을 통한 국민의 ‘기본권 보호’가 헌재의 존재 이유인 이상, 기본권 보호를 더 두텁게 하는 재판소원제도 도입을 반대할 명분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재판소원이 꼭 도입돼야 하는 이유다.
헌법학